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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5에 위치해 있다. 각종 국제경기대회를 개최하고 시민의 체육진흥을 위해 1984년 완공된 국내 최대의 스포츠 경기장이다.잠실종합운동장의 대지면적은 29만 5,000㎡이며, 최대수용인원은 20여만 명이다. 잠실종합운동장 내에는 주경기장·실내수영장·실내체육관·야구장·학생체육관 등이 있다. 그리고 공항과 도심을 편리하게 왕래할 수 있도록 올림픽대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지하철 2호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수단 또한 잘 갖추어져 있다. 잠실종합운동장 단지 내에는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1만 대 이상의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이 갖춰져 있다.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특별시에 의해 1976년 9월 건설기본계획을 수립되고, 같은 해 11월 공사계약을 체결하고 공사에 착수한다. ..

양재동 화훼공판장은 1991년 6월에 개장한 국내 최초의 공영 화훼도매시장으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의 속칭(俗稱)이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27 일대에 소재하고 있으며, 주요 취급품목은 절화류(折花類)·난류(蘭類)·관엽류(觀葉類)·춘란류(春蘭類) 등이다.양재동 화훼공판장은 화훼산업의 종합유통센터를 육성하고, 수출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양재동 화훼공판장의 설립으로 우리나라 화훼산업의 유통과정을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화훼류의 수급안정과 농가소득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양재동 화훼공판장은 대지면적 87,923.4㎡에 부지면적 69,585㎡, 시설면적 38,331㎡ 규모이다. 공판장은 2개동의 분화매장과 절화매장, 종묘매장, 자재매장, 초화매장, 나무시장 및 경매장과 ..

경기도 과천시에서 발원해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炭川)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양재천은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과천시가지를 관류하다가 어린이대공원 뒤 청계산에서 발원한 막계천과 합류하고, 서초구 양재동에 이르러 청계산 동쪽계곡에서 발원한 여의천과 합류한 다음 강남구 대치동을 경유 탄천으로 유입되는 지방 하천으로 유로 총연장은 15.6㎞이며 서초구에서 관리하고 있는 구간이 3.7㎞, 강남구 구간이 3.5㎞이며 나머지 8.4㎞는 과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본래 곡류하는 하천이었으나 1970년대에 시행된 개포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직강화(直江化)가 이루어졌다. 최근 도심을 흐르는 양재천은 생태계의 복원이라는 목표 아래 자연형 하천공법을 적용해 하천의 자연성을 되살리고, 식생호안을 도입함..

배재고등학교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27(고덕동 313번지)에 있다. 배재고등학교의 전신은 배재학당이다. 배재학당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欲爲大者當爲人役)’라는 교훈 아래, 1885년에 미국 북 감리회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이다.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상륙한 아펜젤러 목사는 한국의 정세가 불안정하자 4월 13일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6월 21일 다시 인천항에 도착한다. 아펜젤러가 자신보다 한 달 먼저 도착하여 병원을 운영하던 스크랜튼 의사의 집 방 2칸을 빌려 교실로 만들고 이겸라(李謙羅)와 고영필(高永弼) 두 사람에게 영어수업을 하면서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1886년에 학생이 16명으로 늘어나자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

십자성 마을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다가 부상을 당한 전상자(戰傷者)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강동구 천호동에 조성된 국가유공자촌이다.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대한민국 국군 전상(戰傷) 용사들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자금을 조달해 지은 마을로, 1974년 10월 31일 십자성마을로 이름붙인 뒤 지금까지 많은 국가유공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을 건립할 당시 원호처에서는 세대 당 정착 대부금을 보태 주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천사십만 원의 하사금을 내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밖의 힘겨운 일은 해병여단에서 지원해 주었다.5천여 평의 대지 위에 마을 복지회관과 101동의 주택을 건립해 해병대 출신 70세대와 육군 출신 30세대, 유족 1세대 등 총 101세대의 파월 전상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입주하였다. 처음..

한남대교(漢南大橋)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 사이를 잇는 다리로, 1966년 1월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준공된 한강 교량이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의 관문 역할을 하는 다리로 한강에서 네 번째로 건설된 교량이다.1960년대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영동지구 개발계획 등 서울 외곽지역의 개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한남대교의 개통으로 우리나라 전지역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건설 당시에는 제3한강교라고 불리었으나 1985년 한강종합개발공사를 진행하면서 한강의 교량 명칭을 정리할 때 한남대교로 명명되었다. 이후 경부고속도로와 강남대로의 교통량 증가로 부담을 갖게 되어 1996년 확장 및 성능개선 공사에 돌입, 2001년 기존 교량의 하류..

서강대학교 본관은 서강대학교가 1960년 개교하기 전인 1959년에 노고산 중턱에 완공되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학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서강대학교 본관은 대한민국의 근대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초기 대표작품이다. 그는 세계적인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1956년 귀국과 함께 국내에서 다양한 건축 설계 활동하였는데, 초기 활동 시기에 설계한 작품에 본관이 포함된다.서강대학교 본관은 노고산 능선에 평행하게 세워졌다. 본관의 특징은 사선으로 차양 판을 대어 건물을 관통하여 햇살을 조정하게 한 점인데,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이 서향에 놓인 건물에 오후가 되면 들어오는 햇빛을 막는 역할을 해 준다. 특..

홍대 앞 서교 365는 마포구 서교동 365-2번지에서 26번지까지 23개의 필지에 형성된 가늘고 긴 상가거리를 일컫는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로3길 1 일대에 위치한 이 상가거리는 특이하게도 지번이 거리 명칭으로 굳어진 곳이다.홍대 앞 서교 365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연료인 석탄을 실어나르던 선로를 따라 형성된 거리이다. 1976년 발전소의 연료가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되면서 폐철로 철둑 위에 하나둘 들어선 건물들은 이곳 필지의 특성상 그 폭이 2~5m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고 가느다란 건물들이 약 250m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는 이곳은 마치 운행을 멈춘 기차처럼 보이기도 한다.홍대 앞 서교 365는 1999년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조성계획’에 포함되었으나 예산 ..

「호미화방」은 1975년 조사순이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에 개업하여 2대째 운영되고 있는 화방이다.호미화방은 1961년 1대 대표 조사순이 교직을 퇴임한 후 홍익대학교 앞,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구점을 열었다가, 1971년 전(前) 누가화방 대표인 김기현이 운영하던 화방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순 씨는 1970년대 홍익대 주변에 화실이 속속 생겨나고 화가지망생들이 몰려들자 화방을 운영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사업관이 변하였다고 한다. 사업관이 바뀌게 된 계기가 1993년 2월 15일자 『일간스포츠』의 ‘14평 작은 공간에 고품질화구 3천여종’ 기사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작품 한 점을 환성시키기 위해 새벽에도 몇 번씩 가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가난한 미술학도들이 나의 장사관을 ..

일광방앗간은 1965년에 개업하여 대를 이어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방앗간으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성내천로39길 27-1에 소재한다. 일광방앗간은 현 운영주의 시부(媤父)인 창업주 최성옥이 지금의 장소에 방앗간을 개업해 오늘에 이른다.일광방앗간은 1960년대 중반에 개업, 1979년부터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다 타계 후 창업주의 며느리인 현 운영주가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1994년 방앗간이 있던 구옥(舊屋)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어 재개업하였다. 2006년 최운용 씨가 사망한 이후 부인 원재만 씨가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일광방앗간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곳으로, 주 고객층은 인근의 주민들이다. 고객의 연령대는 다양한 편이며, 더러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