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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동대문패션타운은 서울을 대표하는 패션시장으로서 생산부터 판매까지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패션 클러스터이자 20세기 산업화의 상징이다. 1998년에 두산타워와 밀리오레로 새롭게 형성되었다.두산타워는 자체적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하여 독자적 브랜드를 키우는 동대문 패션산업의 대표 상가이다. 지하 2층, 지상 8층의 1998년 준공된 의류 전문 도·소매시장이다.밀리오레는 1998년 지하6층, 지상14층으로 준공된 의류 전문 도·소매시장으로 IMF때 동대문 열풍을 몰고 온 동대문 패션산업의 메카이다. 밀리오레는 본래 의류, 잡화 등을 판매하는 일반시장이었으나 1998년 시장 내에 소매상권이 형성되면서 을지로6가 시장 조합원들과 함께 밀리오레를 탄생시켰다.2004년, 2009년, 2014년에 내부 리모델링을 했으며..

광희시장(光熙市場)은 1979년 5월에 개장한 대규모 패션몰로 서울특별시 중구 마장로1길 21에 소재한다. 가죽 제품과 보세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광희시장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들이 많아 특이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내방객들이 들르는 필수코스이다.광희시장은 양질의 가죽제품과 보세의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은 물론 남다른 멋을 추구하는 내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또한 동유럽 보따리상들의 내왕이 잦아 이들을 통한 수출입 업무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며, 지방이나 용산·이태원 등의 보세상가에서도 제품 구입을 위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가방류와 일반 의류점이 밀집해 있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오후 9시에 개장하여 오전 5시에 폐장한다. 모피제품의 2층과 가죽의류의 3층, 캐..

풍년철물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봉로2길 1에 위치한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1969년에 개업한 철물점이다. 풍년철물은 1960년대 후반에 문을 열어 2대에 걸쳐 한곳에서 영업을 이어온 철물점으로 청계7가 교차로에서 우측 청계천변에 소재한다.풍년철물은 창업 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성업을 이루었으나 IMF를 겪으면서 매출이 급감하여 현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 운영주는 1988년 부친으로부터 풍년철물을 이어받았다. 풍년철물에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으며, 시대가 변하면서 판매 물품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주요 취급품목은 철물 및 공구들이며, 고객의 연령층은 대부분 30대에서 50대 사이로 한곳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덕분에 단골손님들이 많다.풍년철물이 소재한 건물은 ..

동신교회 본당은 1956년 4월에 준공되어 동신교회의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석조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44길 43에 소재한다. 동신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서울동노회 소속이다.동신교회는 1956년 2월 김세진 목사와 신도 35명으로 구성된 신앙공동체가 첫 예배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다. 그해 4월 본당 건물을 준공하고, 1969년 5월 증축공사를 실시하였다. 1979년에 또 한 차례 본당 증축공사를 시행하였으며, 1976년과 2004년에 제1교육관과 제2교육관을 각각 신축하였다. 동신교회는 내적으로는 서로를 사랑하는 화목한 공동체를 지향하고, 외적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신앙공동체를 표방한다.동신교회 본당은 준공 당시 상당한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건축물로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큰 하..

서울종합방재센터 건물은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피의자에 대한 취조 용도로 사용하던 제6별관 건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가길에 위치하고 있다. 지상 구조물 없이 지하 3층까지 있는 이 건물은 지난 시기 민주인사에 대한 고문과 취조가 이루어지던 곳이다.1995년 국가안전기획부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겨간 뒤, 2002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악행이 자행되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구조 용도로 활용하자는 취지에 따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전과 함께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종합상황실로 쓰기 위해 내부를 리모델링하면서 건물은 과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2009년 3월, 서울시가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일제가 ..

YWCA위장결혼식사건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었던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회관이 있던 자리이다.한국YWCA는 1922년에 창립되어 계몽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복지운동, 평화운동 등을 펼쳐왔다.‘YWCA위장결혼식사건’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 시기이자 계엄하였던 1979년 11월 24일 민주인사들이 결혼식을 가장하여 국민연합·해직교수협의회·민주청년협의회 회원 5백여 명은 서울 YWCA강당에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가두시위를 감행한 사건으로 명동집회사건이라고도 한다.‘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개헌 투쟁 과정에서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전역량이 총결집하여 5월 27일 탄생되었으며 이후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반독재 국민전선으로서 국방부 본부라고도 한다. 6월 10일 ‘범..

명동교자는 1966년 박연하 대표가 친척이 운영하는 칼국수집을 인수하여 ‘장수장’을 개업한 것이 시초이다. 1967년 명동으로 이전한 후, 1969년 명동에 분점도 개업하였으며, 1970년에 ‘명동칼국수’로 상호를 개명하였다. 1976년에는 현재의 위치로 본점이 이전하였다. 한편, 명동칼국수가 명동의 명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상호 도용이 전국적으로 일어남에 동시에 명동칼국수의 이미지도 하락하게 되었다. 이에 1978년에는 상호를 ‘1966년 창업-명동교자 (구)명동칼국수’로 변경하여 현재의 명동교자가 되었다.개업 초기의 메뉴는 칼국수만 있었으나, 1970년대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하여 다양한 메뉴를 추가하게 되었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콩국수, 만두도 메뉴로 선보이게 되어 2023년 현재, 칼국수,..

1962년 개업하여 같은 지역에서 계속 운영해 오고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이다.창업주 하종순 대표는 22세경 이모의 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기술을 익히다가 2~3년 후 스승을 만나 기술을 전수받아 디자이너가 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0길 15에 마샬 1호점을 개업한 이후 현재 전국에 20여 개의 마샬 지점이 있다.1970년대 초에 미스코리아 미를 배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스코리아 진 15명을 포함한 120여 명의 미스코리아를 배출해냈다. 이로 인해 1990년대에는 ‘미스코리아 되려면 마샬미용실 가라’는 말까지 있을 만큼 유명했다. 1990년대는 미스코리아 배출을 위해 미용실 간 경쟁이 과열된 시기였다. 1997년 1월에는 마샬 1호점에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오랜 기간 운영해 온 ..

193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영화관이며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기까지 근현대 연극 및 공연예술을 이어온 역사적 공간이다.건물은 1936년 4월, 타마타 키즈지가 설계하여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36년 10월부터 1945년까지 주로 일본영화를 상영했고 1946년 1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미군정하에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영화 등을 상영했다.1945년 광복 이후 국제극장, 서울시 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사용된 예술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한 문화적 장소로써 당시 문학인들과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 공연예술과 명동 문화의 구심점이 되었던 문화적 장소이다. 1947년 12월부터 1957년 6월까지 서울시 공관으로 사용되었다.1956년 5월에 ‘시립극장’으로 개칭..

「융태행」은 1957년 개업하여 2대째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화교(華僑) 제과점이다. 1957년 지금의 플라자호텔 남쪽에 위치한 한화빌딩 자리에 개업하였다.초기에는 식품점으로도 운영되었던 융태행은 가게가 위치하였던 지역이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한화생명빌딩 자리 등을 전전하다가 1996년 중구 남대문로1길 26-9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1대 대표는 화교인 서(徐)씨였다. 2대 대표인 난(欒)씨는 젊은 시절부터 융태행 제과점의 직원이었는데, 1978~1979년 사이에 1대 대표인 서씨가 은퇴하면서 난씨가 가게를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은 3명 정도이며 설날이나 추석 등에 아르바이트와 함께 제과 양을 늘리며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운영하고 있다.보통 서양과자들은 첫 맛이 자극적인데 반해 융태행에서 판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