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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미래유산] 호미화방 본문
「호미화방」은 1975년 조사순이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에 개업하여 2대째 운영되고 있는 화방이다.
호미화방은 1961년 1대 대표 조사순이 교직을 퇴임한 후 홍익대학교 앞,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구점을 열었다가, 1971년 전(前) 누가화방 대표인 김기현이 운영하던 화방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순 씨는 1970년대 홍익대 주변에 화실이 속속 생겨나고 화가지망생들이 몰려들자 화방을 운영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사업관이 변하였다고 한다. 사업관이 바뀌게 된 계기가 1993년 2월 15일자 『일간스포츠』의 ‘14평 작은 공간에 고품질화구 3천여종’ 기사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작품 한 점을 환성시키기 위해 새벽에도 몇 번씩 가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가난한 미술학도들이 나의 장사관을 변하게 하였다.”
미술학도들의 집념에 고무된 조사순 대표는 그 때부터 가장 질이 좋은 화구들만 들여 놓고 오전 7시 이전에 가게 문을 열어 자정이 돼서야 문을 닫았다. 또 혹시 학생들이 휴일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을까 해서 설날과 추석 이틀만 빼고 연중무휴로 가게 문을 열어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2013년 5월 28일 『스트리트h』의 “홍대앞 예술가들 벗삼아 30년 지켜온 외고집 조석현 대표”라는 기사에는 부친에 대한 장남 조석현 씨의 기억이 이렇게 실려 있다.
“작업하다가 재료가 필요해 달려 온 미대생들이 아예 셔터문을 못 닫게 붙들고 있을 정도였어요. 부친께서 한 달에 딱 하루 가게를 쉬었는데, 지방에서 올라 온 학생들이 하도 원성이라, 그 뒤론 쉬지도 못하셨지요. 하지만 부친께서 미술학도들의 이런 집념과 정열을 참 좋아하셨어요.”
1987년부터는 조사순 대표의 뒤를 이어 4남 중 장남인 조석현 씨가 운영을 이어받았다. 휴일 없이 일만 하는 것이 지겨워 장사는 절대로 안한다고 하였던 조석현 씨는 전기과를 졸업한 후 전기회사에 입사해 공장장까지 되었지만 부친의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화방을 맡았던 것이다.
2001년 이후 서교쇼핑센터 1층으로 이전하였지만 여전히 홍대 미대생들의 ‘보급기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홍콩과 대만에서 바이어들이 방문할 정도로 인정받는 화방이 된 호미화방. 호미화방은 작업하다가 재료가 필요해 달려온 미대생들을 위해 현재도 연중무휴로 운영되면서 2대째 화방을 이어가고 있다.
호미화방은 1961년 1대 대표 조사순이 교직을 퇴임한 후 홍익대학교 앞,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구점을 열었다가, 1971년 전(前) 누가화방 대표인 김기현이 운영하던 화방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순 씨는 1970년대 홍익대 주변에 화실이 속속 생겨나고 화가지망생들이 몰려들자 화방을 운영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사업관이 변하였다고 한다. 사업관이 바뀌게 된 계기가 1993년 2월 15일자 『일간스포츠』의 ‘14평 작은 공간에 고품질화구 3천여종’ 기사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작품 한 점을 환성시키기 위해 새벽에도 몇 번씩 가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가난한 미술학도들이 나의 장사관을 변하게 하였다.”
미술학도들의 집념에 고무된 조사순 대표는 그 때부터 가장 질이 좋은 화구들만 들여 놓고 오전 7시 이전에 가게 문을 열어 자정이 돼서야 문을 닫았다. 또 혹시 학생들이 휴일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을까 해서 설날과 추석 이틀만 빼고 연중무휴로 가게 문을 열어 놓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2013년 5월 28일 『스트리트h』의 “홍대앞 예술가들 벗삼아 30년 지켜온 외고집 조석현 대표”라는 기사에는 부친에 대한 장남 조석현 씨의 기억이 이렇게 실려 있다.
“작업하다가 재료가 필요해 달려 온 미대생들이 아예 셔터문을 못 닫게 붙들고 있을 정도였어요. 부친께서 한 달에 딱 하루 가게를 쉬었는데, 지방에서 올라 온 학생들이 하도 원성이라, 그 뒤론 쉬지도 못하셨지요. 하지만 부친께서 미술학도들의 이런 집념과 정열을 참 좋아하셨어요.”
1987년부터는 조사순 대표의 뒤를 이어 4남 중 장남인 조석현 씨가 운영을 이어받았다. 휴일 없이 일만 하는 것이 지겨워 장사는 절대로 안한다고 하였던 조석현 씨는 전기과를 졸업한 후 전기회사에 입사해 공장장까지 되었지만 부친의 가업을 잇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화방을 맡았던 것이다.
2001년 이후 서교쇼핑센터 1층으로 이전하였지만 여전히 홍대 미대생들의 ‘보급기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홍콩과 대만에서 바이어들이 방문할 정도로 인정받는 화방이 된 호미화방. 호미화방은 작업하다가 재료가 필요해 달려온 미대생들을 위해 현재도 연중무휴로 운영되면서 2대째 화방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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