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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독다방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36에 소재한 근린생활시설로 1971년에 개업, 3대째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커피숍이다. 독다방은 2005년에 한 차례 폐업하였다가 8년 만인 2013년 1월 이전 상호인 ‘독수리다방’의 약칭인 독다방으로 재개업하였다.현 운영주의 조모 김정희가 1971년 음악다방으로 문을 연 독다방은 오랫동안 가난한 대학생들의 만남의 장소와 토론 공간으로 활용되어 온 신촌의 작은 랜드마크이자 명물이다. 독다방은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소통의 공간이었으며, 기형도와 성석제 등 문인들의 토론 장소였다. 또 배우 명계남과 야구선수 고 최동원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독다방은 1980년대 후반에 4층으로 증축하고, 1998년 새 건물을 준공하였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프랜..

공씨책방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51에 위치한 헌 책방이다.1972년 경희대 근처에서 창업주가 운영했던 ‘대학서점’이 그 시초이다. 서점은 1976년에 청계천으로 옮겼다가 1984년에는 종로구 신문로의 새문안교회 맞은편에 창업주의 성을 따서 ‘공씨책방’으로 개칭하여 이주했다.광화문 일대 재개발로 인해 1991년에 신촌으로 이전했다가 1995년에 현재 위치에 정착했다. 공씨책방이 유명한 이유는 창업주 공진석 씨 때문이다. 창업주는 인문사회과학 책이 들어오면 모두 읽고 나서야 손님에게 판매했다고 한다.특히, 손님이 관련 분야를 이야기하면 그에 적절한 책을 추천해 주어 단골이 많았다.창업주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서주변」이라는 글을 발표하여 ‘13회 신동아 논픽션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

홍익문고는 1960년에 개업한 서점으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2에 위치하고 있다.홍익문고는 현 운영주의 선친인 창업주 박인철이 노점 책방을 하다 1960년 가게를 얻어 헌책방으로 개업해 오늘에 이른다.지하철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소재한 홍익문고는 젊음의 거리 신촌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오랫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만남의 공간이다.홍익문고가 지금의 건물로 이전해 온 것은 1978년으로, 이전 당시에는 2층까지만 서점으로 쓰다가 1984년부터 건물 전체를 서점으로 활용하고 있다.홍익문고 건물은 1965년에 준공된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철근콘크리트조 건축물로 연면적 403.54㎡이다. 2012년 창천동 일대가 ‘신촌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홍익문고는 철거 위기에 처하였으나 ..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은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창립 70주년 기념사업으로 준공된 건축물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에 위치하고 있다. 준공 당시 3,500석 규모의 객석과 무대를 갖춘 동양 최대의 학교 건축물로 세종문화회관이 설립되기 전까지 수도 서울의 중요한 예술공간으로 기능하여 각종 공연이 개최된 곳이다.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은 1955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56년 5월에 완공된 철근콘크리트조 지하 2층 지상 5층 석조건축물로 건축면적 2,281.72㎡에 연면적 6,623.01㎡ 규모이다. 건축가 강윤(姜沇)이 설계를 맡았다. 1965년에 건물의 좌우 부분을 증축하였으며, 2001년 무대를 확장하고 최신 음향설비를 확충하는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시행하였다. 대강당에는 콘서트홀 외에..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거리 인근에 있는 동명대장간은 1930년대 말에 개업하여 약 80년 동안 3대에 걸쳐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 대장간이다.동명대장간 창업주 강태봉(2002년 작고) 씨는 강원도 철원에서 대장간 일을 하다가 한국전쟁 이후 1956년에 현 위치에 동명대장간을 개업하였고 현재 아들 강영기 씨가 선친의 대를 이어 같은 장소에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강영기 씨는 열네 살이던 1964년부터 선친을 도와 대장일을 시작했고, 선친이 대장간 문을 연 때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말이었으니 80년째 부자가 대를 이어 대장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06년부터는 아들 단호 씨가 아버지 밑에서 대장일을 배우고 있어 말 그대로 강씨 집안은 대장일로 일가(一家)를 이뤘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중로 16길 46에 있는 노옥당약업사는 1975년경 개업하여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한약재 판매점이다.1975년경 노옥당약업사는 동서울시장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가 1986년에 현 건물을 지으면서 가게를 옮겼다. 2012년에 창업주인 손기수 씨가 사망한 이후, 현 대표 손광식 씨가 2대째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전라도 보성읍에서 약초 재배를 하고 농민조합원으로 활동하던 손기수 씨는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에 한약재를 납품하기 위해서 서울을 오가다가 1970년대 초반, 당시 친척들이 있던 이곳에 정착하면서 노옥당약업사를 열었다.현 대표는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중국에서 공부하여 중의사 자격증을 땄으며, 2012년 창업주가 작고한 후 가게를 물려받았다. 少欲知足 : 네이버..

아르코 예술극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유의 무대예술 공연장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8길 7에 위치하고 있다. 1981년 4월 문예회관 극장으로 개관하였으며, 200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회관으로 개칭하였다.2005년 9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발족과 함께 명칭을 아르코예술극장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른다.아르코 미술관은 철근콘크리트조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조적조 적벽돌건물로 건축면적 2,375.49㎡에 연면적 5,365.44㎡ 규모이다. 우리나라 근대건축의 대표적 작가 김수근(金壽根)이 설계하였으며, 붉은 벽돌이 특징인 아르코 예술극장은 아르코 미술관과 함께 대학로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서울풍물시장은 옛 풍물과 일상생활용품, 관광, 토속 상품, 민속 먹거리 등을 저렴하고 편안하게 먹고 즐길 수 있는 풍물 한마당이 어우러진 시장이다. 원래 청계천이 복원되기 전 풍물시장은 황학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황학동 벼룩시장에는 오래된 풍물 물건이나 상품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우리나라의 벼룩시장 또는 만물시장을 대표했다.황학동과 청계천변 노점 상태로 운영 중이던 황학동 벼룩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황학동 도깨비시장(벼룩시장)’ 등 주변 노점상가를 정리해서 2004년 초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으로 이주하여 영업을 했다. 2006년에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사업이 발표되면서 관광산업과 연계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풍물시장 개발을 위해 2007년에 시유지인 동대문구 신설동에 세계적인 풍물시장을 목표..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58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영등포노회가 설립한 노동선교센터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의 후신이며, 1977년에 창립한 성문밖교회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기관교회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성문밖교회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버드나무로23길 24에 소재한다.195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전도부가 산업전도위원회를 조직하고 영등포 지구에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한 것이 영등포산업선교회의 시작이다.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는 1960년대부터 현장의 노동조합 결성을 지원하고 노동운동을 위한 소모임 활동을 전개하였다.이 때문에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는 1970년대 들어 유신정권과 사용자측으로부터 지속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이에 1977년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선교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기관교회인 영등포노동교회..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1980년 건축가 이해성이 설계한 박물관이다.건축가 이해성은 1953년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7년 한양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공과대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이해성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양대학교 박물관뿐만 아니라 의대 부속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한양대학교 건축물과 남산 서울시립도서관 등의 건물을 설계하였다.2000년 리모델링되었고,2017년에는 박물관 2층의 세미나실이 리모델링되었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이해성 건축가의 초창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서울미래유산의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