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양성평등
- 세월호
- 1029
- 민우회
- 38여성대회
- 수요시위
-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 성폭력
- 1029참사
- 2023 여성노동자대회
- 38여성의날
- 여성의날
-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 민우총회
- 8888
- 강간죄 개정
- 고용평등상담실
- 여성가족부
- 고용평등상담실폐지중단
- 채용성차별
- 노조법 2·3조
- 추모촛불
- 차별금지
- 3·8 세계여성의날
- standwithmyanmark
- 임신중지
- Today
- Total
목록바닥동판 (105)
少欲知足

광화문광장 이순신장군 동상 전면에포토샷(photoshot) 동판이 있다.많은 관광객들이 서울을 즐기고 있다.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백정(白丁)들의 신분 해방을 위해 설립된 사회운동단체.개항 이후 자유평등사상이 유입되고, 부분적이나마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한 백정들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백정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신분 차별의 대상이었는데, 1922년 일본의 특수부락민인 에다[穢多: 屠者]가 신분해방단체인 수평사(水平社)를 조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백정들은 자녀들의 입학거부문제를 계기로 1923년 4월 25일 경남 진주에서 신분 해방을 목표로 한 형평사를 창립했다.

사상계사 발행으로 발행인은 장준하(張俊河)였으며뒤에는 부완혁(夫琓爀)이었다.이 잡지는 당초 1952년 8월 당시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원장 백낙준)의기관지였던 ≪사상 思想≫으로 출발하여,당시 6·25전쟁의 와중에서 국민사상의 통일,자유민주주의의 확립 및 반공정신앙양 등 전시하에 있는지식인층의 사상운동을 주도하는 사상지(思想誌)로 창간되어 통권 4호를 내었다.그 뒤 이 잡지의 편집에 참여하였던 장준하가 1953년 4월에 단독 인수하여≪사상계 思想界≫라는 제호로 시판함으로써본격적인 종합교양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군사독재·유신정권 비판 기리고 시민에 알리려 서울시, 2016년 건물 터 종각역 바닥동판 설치 최근 유실 확인… 市 "철거 안 해, 경위 파악 중" 2023. 12. 6. 한..

1972년 박정희 정부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를 명분으로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유신헌법 제 35조를 바탕으로 헌법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설치했다.통일주체국민회의는 유신헌법 제 39조에 근거하여 '무기명 투표에 의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의 시행 역할까지 담당했는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회의장으로서 선거가 치러진 곳이 장충체육관이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과 괴리된 선거 방식과 체육관이라는 비공개적 장소에서 진행된 작태를 비판하기 위해 이와 같이 체육관에서 간선제로 진행된 선거를 체육관 선거라고 지칭하게 되었다.체육관 선거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시절까지 유지되었다. 이 중 최규하는 다른 둘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데 워낙 임기가 짧기도 했고 10.26 사건 당시 국무총리로..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만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오른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의 허종 기자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다.4월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후 귀교 중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國家保衛非常對策委員會), 약칭 '국보위'라고 한다. 1980년 5월 31일 전국비상계엄하에 설치된 국보위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강경세력으로 구성되었다. 국보위는 안보태세 강화·경제난국 타개·사회안정으로 정치발전을,사회악 일소로 국가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공직자 숙정·중화학공업 투자재조정·졸업정원제와 과외금지·출판 및 인쇄물 제한·삼청교육실시 등지배구조의 재편을 위한 제반 조치를 실시했다.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함으로써 국보위의 정치적 정지작업이 마무리되었다.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이 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국보위는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되었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신군부의 원활한 민정이양을 위한 모든 조처를 마련한..

조선어학회는 1921년에 주시경의 문하생이었던 최두선, 임경재, 권덕규, 장지영 등이 모여 국어의 연구와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민간 학술 단체이다.조선어학회 사건(朝鮮語學會 事件)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2년 일본 제국이 조선어학회를 항일독립운동단체로 판단해 관련 인사들을 집단으로 체포 및 투옥했던 사건이다. '한글학회 사건' 또는 '한글학자 집단 체포사건' 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어학회가 해방 후 이름을 바꾼 한글학회에서는 '조선어학회 수난'으로 지칭하고 있다.이 사건으로 국어사전 편찬 사업은 중단되었고 원고가 실종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 남한에서는 1957년 한글학회에 의해 《우리말 큰사전》의 편찬 사업이 완료되었으며 북한에서는 김두봉 등의 주도로 《조선말사전》이 편찬되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중심의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취지와 선전문, 어린이날 행사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은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반에게 '어린이'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한 날이었다.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가꾸는 일임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어린이날'은 마치 꺼질 듯 위태로웠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고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사는 나라로서 어린이 인권의 새 장을 만든 계기였다.

문화재청은 2020년 4.19 혁명 60주년을 맞아 '고려대생 시위대 피습 사건' 부상자 명단을 공개했다.이 문서에는 4월 18일 당시 고려대 학생들이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돌아오는 길에 정치깡패의 습격을 받은 상황이 드러나 있다. 자세히는 "곤봉 엇개(어깨) 맞다", "머리 터지다", "천일 백화점 근처에서 깡패의 몽둥이로 후두부를 맞고 실신" 등의 구체적인 표현이 기재되어 있다.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의 학과, 학번, 이름, 부상 정도 등 또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