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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예산산성(禮山山城)은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1982년 8월 3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산성리의 서북쪽에 있는 넓은 평야에 솟아 있는 낮은 야산에 흙으로 쌓은 성터이다. 둘레는 655m, 성벽의 높이는 약 2.4m인데, 옛 기록에는 ‘오산성’이라 하여 둘레가 2002척이라 하였다. 이 성은 서에서 북으로 감돌며 흐르는 무한천에 의해 천연적인 방어시설을 형성하고 있다. 유물과 유적은 찾을 수 없으며,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가끔 보일 뿐이다. 이 성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예산이 백제의‘오산’ 혹은 ‘고산’이었던 점으로 보아 백제 때 이 지역의 중심터였던 듯하다. 더구나 백제 부흥군이 당나라 군을 맞이하여 싸웠던 곳이라 전해져 오고 있어, 백제 때 만들어진 ..
화랑묘는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金庾信)[595~673]을 기리기 위해 1965년 세운 사당이다. 예산 지역에 화랑도를 전파한 김시성(金時成)[1908~1993]이 김유신 장군의 호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1965년 예산군에 화랑묘를 건립하였다. 화랑묘는 외삼문과 본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다. 본전에는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화랑묘에서는 매년 3월 27일과 9월 27일 춘추대제를 지내고 있다.
한국군 파병은 1964년 9월 22일 140명 규모의 비둘기 부대를 시작으로 주월한국군 사령부의 지휘통제에 따라 청룡, 맹호, 백마, 십자성, 백구, 은마부대가 참전했다. 예산군은 이를 기리고자 지난 2006년 6월 예산읍 산성리 115-4 월남전 참전공원에 청룡, 맹호, 백마, 십자성, 비둘기, 백구부대 월남전 참전기념탑을 설치했으며, 2022년 12월 주월사한국군사령부 및 은마부대 기념탑을 추가 설치했다. 월남전 참전기념탑에는 예산군 출신 참전용사를 기리기 위해 참전용사 415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향천사는 예산군 예산읍에 위치한 사찰로 655년에 의각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의각은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귀국할 때 불상을 돌배에 싣고 백제 오산현 북포 해안에 이르러 알맞은 절터를 잡지 못하여 몇 달을 머물렀다. 이때 배안에서 치는 종소리가 강촌을 진동하여 마을 이름이 종경리가 되었다. 어느 날 금오 한 쌍이 날아오더니 지금의 절터를 일러주었기에 향천사는 현재의 절터에 자리잡게 되었다고 하며, 근처 산을 금오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샘물’이 있어 이름을 향천(香泉)이라 하고, 의각대사(義覺大師)가 샘물 자리에 절을 짓고 향천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사찰. 향천사는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관련항목 보기 금오산 기슭에 있는 고찰이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샘물’이 있어 이름을 향천(香泉)이라 하고, 의각대사(義覺大師)가 샘물 자리에 절을 짓고 향천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1413년(태종 1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785년(정조 9)에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09년에도 중수하였으며, 1975년과 1976년에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등이 있으며, 여기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전면에 배치되고, 대성전이 후면에 배치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대성전은 정면만 겹처마로 된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97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민족 금융기관이었던 호서은행의 본점 건물이다. 충청남도 서북지역의 교통 및 상업 중심지에 자리한 호서은행은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후 더욱 더 심해진 일본의 금융압박 속에서도 민간자본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민족계 지방은행이다. 2층의 서양식 건물로, 중후한 멋과 비례감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2층의 창문을 하나로 연결하여 근대적인 감각을 살렸으며, 출입구 부분을 돌출시켜 그 위의 지붕을 곡선으로 처리하는 등 앞면을 강조하였다. 1913년 지역의 민간유지들에 의해 건립된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면서도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예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는 2017년 4월 13일 오후 예산군청 앞 분수광장에서 예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 날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1919년 4월13일)에 맞췄다. 충남에서는 천안, 아산, 서산, 서천 등에 이어 7번째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다. 소녀상이 세워진 분수공원은 박근혜 정권 탄핵 집회 때 예산 지역민들이 모여 촛불을 들던 곳이다.
예산군은 충남서부보훈지청의 협조와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의 용역사 등을 통해 관내 수형인명부, 판결문 등 증빙자료를 수집했다. 1919년 3월 3일 예산읍내 동쪽 산에서 있었던 충청남도 최초 3·1만세운동의 주역인 '윤칠영' 등 총 87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다. 그 중 제적등본이 확인된 40명에 대해 지난 8월 서훈신청을 보완했으며, 최종 30명이 2021년 삼일절과 광복절 계기 공적심사 대상에 부의됐다.
태실은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가의 자손이 태어나면 길일을 택해 왕손의 무병장수와 왕실의 번창을 기원하며 태를 백자항아리에 봉안한 곳이다.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태봉산에 있는 헌종대왕 (조선 제24대 임금, 1834~1849) 태실은 일제가 강제병합 후 1927년 왕실을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이왕직'을 설치하고 1928년 전국에 안치된 조선 왕의 태 53기를 파헤쳐 서삼릉으로 옮길 때 훼손됐다. 태실의 기단·중동석·옥개석·귀부 등이 태봉산 위에 흩어진채 방치되다가 2009년 군이 태실정비 예산 3000만 원을 확보해 일부 복원·정비했지만, 원형복원까지 하려면 찾아야 할 유물들이 다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