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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기자간담회 사회자, 발언자 사진과 현수막) 게임·콘텐츠 업계에서 반복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 사건에 대응하고 문제제기하기 위해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출범했습니다. 어제(2024.3.6) 기자간담회에서는 공대위 활동 계획과 함께 전국여성노동조합을 통해 접수된 페미니즘 사상검증 제보 사례를 발표했습니다. 기자간담회 발언과 발족선언문 전문은 첨부파일 보도자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독 발언문 사진) [발언1] 피해자 사례 대독 게임회사 A는 면접자리에서 “이번 '뿌리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완전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질문을 던진 면접위원이 '뿌리사태' 라고 지칭하였다는 점에서 A사가, 해당 면접위원이 이미 ‘넥슨의 갑질과 마녀사냥’을 ‘피..
[출범 선언문] 권력의 부당한 언론장악, 시민사회 연대로 막아내겠습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틀어막는 반헌법적 언론자유 파괴를 반드시 분쇄하겠습니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과 언론 표현의 자유 파괴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비판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압수수색과 고소·고발 및 징계가 남발되는 가운데, 특히 공영방송과 공영미디어가 집중적인 장악과 통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검찰,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해 언론을 장악했던 악행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방송의 공적 책무와 독립성·공공성을 실현하는 공적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공영방송 장악과 통제, 공영미디어 사영화, 비판언론 탄압의 앞잡이로 전락했습니다. 이제는 제도..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天臧山)의 지맥(地脈)이 검정 돌을 꼬치에 꿰어놓은 것 같기 때문에 '돌곶이 마을'이라고 불렸던 데에서 유래했다. 그러다 조선 20대 왕인 경종의 능인 의릉(懿陵)이 이 곳에 안치된 이후 돌곶이에 능(陵)자를 붙여 '돌곶이 능말(마을)'이라고 불렀고, 돌곶이라는 이름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석관(石串)' 이라는 동명이 되었다.
먹골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이곳에서 먹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순 우리말 표기이며, 인근 봉화산 소나무 참숯으로 만든 먹은 품질이 좋아 궁중에 진상했다고 한다. 먹골은 대리(大里-큰말, 넘말), 중리, 후동, 왕방골로 나누어진다. 그중에서 대리는 큰골이라고도 했는데, 먹골 안에서는 제일 큰 마을로 현재 묵동3거리 일대가 된다.
면목(面牧)이라는 동명은 이름의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목장 앞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구문계, 고문계, 곰계, 문계 등으로 불리던 넓은 들판이었는데 이곳에 말목장이 생기면서 면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랑천 근방에 국립 숙소인 송계원(松溪院)이 있어서 중랑천을 송계라고 불렀다고 한다. 송계교를 석교로 개축할 때 16살 되는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홀아비 장님 중이가 부역에 동원되자 그 딸이 남장을 하고 대신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생리현상이 문제가 되어 대나무를 잘라서 옷 속에 넣어 관을 통해 서서 배뇨를 할 수 있게 하고, 되도록 적게 수분을 섭취하는 등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런 눈물겨운 사연을 전해들은 관아에서는 마침내 중이의 부역을 해제함으로써 부역을 대신하던 딸도 눈먼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남자로만 알고 지내던 동료들이 그를 중낭자(仲郎子)라고 불렀으나, 사실은 남장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그녀를 중랑(仲娘)이라 불렀고 이후 중랑(中浪)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