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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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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섬은 일대 지역이 범람원으로, 지대가 낮아 한강에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생겨 섬처럼 보였기에 섬이라고 하였다.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纛旗를 세운 곳이라는 뜻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뚝섬은 원래 ‘둑도’, ‘뚝도(纛島)’, ‘독도(纛島)’ 혹은 ‘살곶이벌’로도 불렸다, 뚝섬나루터는 조선 태조(太祖) 때 강에 떠내려 온 큰 깃발로 인하여 이곳에 독재소를 설치하고,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는 경상도⋅강원도의 세곡(稅穀) 운송을 위하여 선착장을 두고, 한강을 오가는 세곡선(稅穀船)을 관리하다가 조선 후기에는 강원도에서 오는 목재가 모이는 곳으로 변하였고, 나라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세금을 징수한 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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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불렸던 지명, 송파. 소나무가 많은 언덕이라는 뜻의 ‘송파(松波)’에서 유래한 송파는 한강 연안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인하여 선사시대부터 신석기인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고대국가 성립과 함께 고조선의 생활무대가 되기도 하였고, 백제의 시조 온조왕부터 21대 개로왕까지 약 493년간 백제의 수도로 자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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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는 조선 태조가 함흥으로부터 한양으로 환궁할 때 이곳에 이르러, 태종에게 국새(國璽)를 넘겨준 뒤 환궁하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물렀다. 그러자 조정의 대신들이 이곳까지 와서 정무를 의논하고 윤허를 받았다는 데서 의정부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의정부는 1796년보다 먼저 만들어진 동국대지도(1752)에 ‘녹양’이라 기록되어 있고 이 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대동여지도(1861)에도 ‘녹양’이라 기록되어 있다면 당대에 통용된 우리고장의 명칭은 ‘녹양’이 맞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나라 고지도의 대표적 작품인 위의 두 곳에서 ‘녹양’으로 기록된 것을 굳이 대표성을 갖추지 않은 ‘의정부’라는 지명을 강변할 일이 있을까? 더욱이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의정부시사에서도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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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리마을은 큰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마을 이름으로 원래는 외다리였는데, 내시촌에 가마를 들이기 위해 큰다리가 놓여졌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발행된 지도에는 한교(漢橋), 규장각의 고문서에는 대교(大橋 ), 일교(一橋 )로 표기되어 있다. 한(漢), 대(大), 일(一) 자 등은 우리 말의 크다는 뜻을 가진 한자 말이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크다는 뜻의 우리 말 '한교', '대교', '일교'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원 지명은 한다리인데, 일제 강점기에 발음이 흰다리고 바뀌고, 그 말이 다시 백교(白橋)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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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독산동에는 반유구화역이 있었다. 이 역참(驛站)은 공문서 전달, 공무 여행자에 대한 필마(匹馬) 제공과 숙식 주선. 변경의 중요한 군사정보 전달, 사신 접대, 관물(官物) 운반, 공물(貢物) 수송 등 공역(公役)을 담당하는 통신 교통기관으로 30리마다 한 곳씩 설치하였고 역전(驛田)을 두어 경비를 조달하였다. 본 역참에는 찰방(察訪;종6품), 역승(驛丞)·역장(驛長)·역리(驛吏)·역노비(驛奴婢) 등을 두어 상등 말 1필, 중등 말 4필, 하등 말 2필 등 7필의 역마를 관리하였고, 관리(官吏)의 신분에 따라 마패(馬牌)의 말 수대로 역마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역참의 기능은 근세에 이르러 경부선 철도 개통과 시흥역 등장, 그리고 체신 행정과 자동차 문화 발달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구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