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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미래유산] 상동교회(구 새로나백화점) 본문
독립투사들이 모여 헤이그 특사사건 등의 독립운동을 도모했으며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민족운동의 중심지로 활용했던 장소이다.
1886년 미국감리교회에서 파송된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선교사는 현재 정동제일교회 자리에 정동병원을 설립하면서 병원선교를 시작했다. 조선 명종 때 상진대감이 살던 집이라고 해서 교회이름을 상동이라 정하고 1888년에 교회를 설립했다. 그해 병원은 남대문 근처 상동으로 옮겼는데 1895년에 정동병원을 상동병원으로 통합하면서 교회와 병원을 분리했다. 상동교회는 병원으로만 사용했고 교회는 달성궁(현 한국은행 자리)으로 이전했다.
1898년에 전덕기가 입교하고 엡윗 청년회를 조직했으며 1900년 7월, 상동병원이 세브란스병원과 통합되자 그 자리에 현대식 교회건물을 신축하여 1901년 6월에 교회를 재이전했다. 1904년, 교회는 상동청년학원을 설립하여 신학문 보급 및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어깨에 도끼를 메고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시위하며 조약무효 상소운동을 벌였다. 대표인물이 전덕기 목사, 백범 김구(金九) 최재학, 이준(李儁), 이동녕이며 이후 독립투사들이 교회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1907년에는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헤이그 특사사건을 모의했고 같은 해 같은 장소에서 안창호 윤치호 등이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했다. 주시경 선생을 통한 한글보급운동도 진행했다.
1911년, 전덕기 목사(全德基, 1875년 ~ 1914년)는 105인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그 후유증으로 인해 1914년에 숨을 거두었으나 이후에도 교회는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19년 삼일운동을 주도했던 민족 대표 33인 중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4명이 상동교회 출신이었다.
1944년에 교회가 폐쇄되고 일제의 신사참배와 소위 황도정신(皇道精神)의 훈련장인 황도문화관으로 바뀌는 수난을 겪었으나 1945년 8·15광복 후 흩어졌던 교인들이 다시 모여 교회를 재건했다. 1977년에 철근콘크리트조, 지하2층, 지상9층의 현 건물을 준공하여 새로나백화점을 설립하여 경영해 오다가 1998년 IMF 전후로 새로나백화점을 폐점한 후 일반 상가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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