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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유산] 명동예술극장 본문
193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영화관이며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기까지 근현대 연극 및 공연예술을 이어온 역사적 공간이다.
건물은 1936년 4월, 타마타 키즈지가 설계하여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36년 10월부터 1945년까지 주로 일본영화를 상영했고 1946년 1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미군정하에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영화 등을 상영했다.
1945년 광복 이후 국제극장, 서울시 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사용된 예술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한 문화적 장소로써 당시 문학인들과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 공연예술과 명동 문화의 구심점이 되었던 문화적 장소이다. 1947년 12월부터 1957년 6월까지 서울시 공관으로 사용되었다.
1956년 5월에 ‘시립극장’으로 개칭했고 1957년 6월부터 1961년 11월까지 서울시 공관(현 명동예술극장) 내에 한국전쟁으로 대구에 상주하던 ‘국립극장’이 상경하여 자리를 잡았다. 1961년 11월에 서울시 공관이 시민회관으로 이전하자 내부를 전면 개수하여 1962년 3월, 개관식을 갖고 지하 2층, 지상 5층 건물 전체를 명동 ‘국립극장’으로 사용했다. 1973년 9월에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면서 1975년까지 국립극장 산하 ‘예술극장’으로 사용했다.
1975년 11월, 장충동의 국립극장 이전 및 신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는 대한투자금융에 건물을 매각했다. 1993년 문화예술인들과 명동상가번영회가 주축이 되어 ‘명동국립극장 복원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옛 국립극장 복원운동’을 펼쳤다. 2003년 12월에 문화관광부에서 재매입을 결정하여 2004년 5월에 문화관광부에서 부지를 매입했다. 2005년에 복원공사에 착수했고 2009년에 외벽만 남긴 채 리모델링하여 562석 규모의 ‘명동예술극장’으로 재개관했다.
현재 1970년대 명동국립극장이던 시절, 전용극장으로 사용했던 국립극단이 전용극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립극단은 1950년 창단공연 ‘원술랑’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단체로서 2010년 재단법인으로 독립하여 서울역 뒤편 서계동에서 공연을 해 오다가 2015년에 명동예술극장을 승계하여 공연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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