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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서울종합방재센터 건물은 과거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가 피의자에 대한 취조 용도로 사용하던 제6별관 건물로,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6가길에 위치하고 있다. 지상 구조물 없이 지하 3층까지 있는 이 건물은 지난 시기 민주인사에 대한 고문과 취조가 이루어지던 곳이다.1995년 국가안전기획부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겨간 뒤, 2002년 서울종합방재센터가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악행이 자행되던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구조 용도로 활용하자는 취지에 따라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이전과 함께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종합상황실로 쓰기 위해 내부를 리모델링하면서 건물은 과거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2009년 3월, 서울시가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모두 철거하고 ‘남산르네상스 마스터플랜’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일제가 ..
YWCA위장결혼식사건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었던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회관이 있던 자리이다.한국YWCA는 1922년에 창립되어 계몽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복지운동, 평화운동 등을 펼쳐왔다.‘YWCA위장결혼식사건’은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 시기이자 계엄하였던 1979년 11월 24일 민주인사들이 결혼식을 가장하여 국민연합·해직교수협의회·민주청년협의회 회원 5백여 명은 서울 YWCA강당에 모여 성명을 발표하고 가두시위를 감행한 사건으로 명동집회사건이라고도 한다.‘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개헌 투쟁 과정에서 민족민주운동 진영의 전역량이 총결집하여 5월 27일 탄생되었으며 이후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한 반독재 국민전선으로서 국방부 본부라고도 한다. 6월 10일 ‘범..
명동교자는 1966년 박연하 대표가 친척이 운영하는 칼국수집을 인수하여 ‘장수장’을 개업한 것이 시초이다. 1967년 명동으로 이전한 후, 1969년 명동에 분점도 개업하였으며, 1970년에 ‘명동칼국수’로 상호를 개명하였다. 1976년에는 현재의 위치로 본점이 이전하였다. 한편, 명동칼국수가 명동의 명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자, 상호 도용이 전국적으로 일어남에 동시에 명동칼국수의 이미지도 하락하게 되었다. 이에 1978년에는 상호를 ‘1966년 창업-명동교자 (구)명동칼국수’로 변경하여 현재의 명동교자가 되었다.개업 초기의 메뉴는 칼국수만 있었으나, 1970년대 일본에서 기계를 수입하여 다양한 메뉴를 추가하게 되었으며, 시대의 흐름에 맞춰서 콩국수, 만두도 메뉴로 선보이게 되어 2023년 현재, 칼국수,..
1962년 개업하여 같은 지역에서 계속 운영해 오고 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미용실이다.창업주 하종순 대표는 22세경 이모의 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기술을 익히다가 2~3년 후 스승을 만나 기술을 전수받아 디자이너가 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0길 15에 마샬 1호점을 개업한 이후 현재 전국에 20여 개의 마샬 지점이 있다.1970년대 초에 미스코리아 미를 배출한 것이 계기가 되어 미스코리아 진 15명을 포함한 120여 명의 미스코리아를 배출해냈다. 이로 인해 1990년대에는 ‘미스코리아 되려면 마샬미용실 가라’는 말까지 있을 만큼 유명했다. 1990년대는 미스코리아 배출을 위해 미용실 간 경쟁이 과열된 시기였다. 1997년 1월에는 마샬 1호점에 화재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오랜 기간 운영해 온 ..
193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영화관이며 1973년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하기까지 근현대 연극 및 공연예술을 이어온 역사적 공간이다.건물은 1936년 4월, 타마타 키즈지가 설계하여 ‘명치좌’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1936년 10월부터 1945년까지 주로 일본영화를 상영했고 1946년 1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미군정하에 ‘국제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외 영화 등을 상영했다.1945년 광복 이후 국제극장, 서울시 공관, 국립극장 등으로 사용된 예술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한 문화적 장소로써 당시 문학인들과 연극, 오페라, 음악회 등 공연예술과 명동 문화의 구심점이 되었던 문화적 장소이다. 1947년 12월부터 1957년 6월까지 서울시 공관으로 사용되었다.1956년 5월에 ‘시립극장’으로 개칭..
「융태행」은 1957년 개업하여 2대째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화교(華僑) 제과점이다. 1957년 지금의 플라자호텔 남쪽에 위치한 한화빌딩 자리에 개업하였다.초기에는 식품점으로도 운영되었던 융태행은 가게가 위치하였던 지역이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한화생명빌딩 자리 등을 전전하다가 1996년 중구 남대문로1길 26-9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1대 대표는 화교인 서(徐)씨였다. 2대 대표인 난(欒)씨는 젊은 시절부터 융태행 제과점의 직원이었는데, 1978~1979년 사이에 1대 대표인 서씨가 은퇴하면서 난씨가 가게를 이어 받아 운영하고 있다. 종업원은 3명 정도이며 설날이나 추석 등에 아르바이트와 함께 제과 양을 늘리며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운영하고 있다.보통 서양과자들은 첫 맛이 자극적인데 반해 융태행에서 판매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