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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페미니즘은 혐오의 ’거룩한‘ 파도에 굴하지 않는다. 정치는 책임을 다하라. (11/1) 본문
[성명]
페미니즘은 혐오의 ’거룩한‘ 파도에 굴하지 않는다. 정치는 책임을 다하라.
10월 27일,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라는 이름의 연합예배를 표방한 혐오집회가 서울 광화문, 서울시청, 남대문 일대에서 열렸다. 한국교회총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 주요 연합기관과 여의도순복음교회, 사랑의 교회 등 대형 교회가 주도한 해당 예배에서 ‘100개 기도 제목’을 공개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담고 있었다. 기도 제목에 “젠더갈등의 원인은 자기중심성이라는 죄”,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손해라고 말하는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극우ㆍ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페미니즘 선동은 극에 달했다. 성평등과 사회 정의을 추구하는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혐오가 이처럼 공공연히 드러나게 된 데에는 정치의 책임이 있다. 중도ㆍ보수 성향의 개신교단에서조차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 기도의 내용을 일일이 나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신념’을 빌미로 차별과 혐오를 말하는 자들의 눈치를 보며 인권과 평등을 나중 순서로 미루는 한국의 정치에 대해 우리는 인권과 평등의 언어로 맞서고자 한다.
연합예배는 “소외된 이웃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라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축전 영상으로 시작했다. 보수 정치세력이 혐오 선동을 일삼으며 극우ㆍ보수 기독교 세력을 등에 업으려 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러나, 1000만 인구가 살고 있는 서울시의 시정 책임자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혐오 선동에 힘을 실어주는 행태를 과연 책임감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국민의 힘을 비롯한 보수 세력만을 규탄할 수는 없다. 지난 10월 2일, 한국교회총연합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당장 시급하고 화급한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먹고 사는 문제들이 충분히 해결되는 게 지금은 더 급선무”라고 발언했다.
일부 특정 종교 세력의 외면이 두려워 “나중에”를 거듭해 온 후퇴의 정치는 이제 혐오의 정치가 되어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악화시키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주장을 정책 기조로 유지하고 있다. 정책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지우는 움직임은 지방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나날이 후퇴하고 있는 성평등에 대한 정부의 인식과 이로 인해 심화하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은 여성의 일자리와 생계, 삶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근거 없는 ‘남성 혐오’와 같은 반여성적 혐오 선동에 정부가 편승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업무상 배제, 부당해고 등 인사상의 불이익은 물론 온라인 상의 신상 유포와 사이버 괴롭힘을 경험하는 등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겪고 있다. 2022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2년 여성폭력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평생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의 비율은 38.6%로 조사되었으며,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25.1%에서 2022년 33%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또한 계속해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을 외면한 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말만 하는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떳떳한가.
성소수자의 삶은 어떠한가. 폭력과 혐오를 경험한 성소수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조사조차 없는 가운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만이 판을 치고 있다. 사회 구성원 존재와 정체성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여기는 순간 그에 대한 폭력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2024년 9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성소수자 인권 단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인권센터 띵동의 선호찬 사무국장은 “띵동 개소 후 9년간 총 242건, 해마다 30건에 가까운 청소년 성소수자의 자살위기 사건들이 있었다.”며 “정부는 이들의 자살예방 정책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연구도 진행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2017년 한국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 중 40%가 넘는 사람들이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체 우리는 성소수자 동료, 동지, 친구, 연인을 얼마나 더, 언제까지 더 잃어야 하는가. 이를 막을 책임이 있는 정부가 폭력과 혐오로 인한 폐해를 공식 통계로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일부 혐오 세력의 주장에만 전전긍긍하는 동안에 말이다.
혐오에 정부가 응답한 결과는 계속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2024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전국 7개 광역시도 중 충청남도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두 번째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가결됐다. “학생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조장한다.”라는 극우ㆍ보수 기독교 진영의 논리에 국민의 힘이 동조하며 폐지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차별금지 사유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간접적으로나마 포함한 학생인권법이 발의되었으나 앞서 한 차례 발의됐다 철회된 발의안에는 일부 기독교계의 반대로 두 용어가 명시되지 않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지난 29일 광주광역시에서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학생은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임신과 출산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라는 당연한 상식이 후퇴하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또한, 성평등·성교육 도서 폐기를 요구하는 집단 민원을 지방정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일도 이어졌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의 말마따나 교내 성폭력, 성희롱이 늘고 있어 조치가 필요했다면, 그 해답은 성평등 도서 폐기가 될 수 없다. 폐기 대상이 된 도서의 다수는 성소수자의 존재를 다루거나 성적 주체로서의 청소년과 여성을 다루고 있었다. 계속해서 늘고 있는 학교 내 성폭력과 성희롱, 페미니즘 백래시,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평등 교육과 포괄적 성교육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대변하고 있는 국민은 대체 누구인가? 보편의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며 모든 구성원이 존엄하게 함께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시민들의 뜻을 정치는 반영하고 있는가. 여성과 성소수자의 인권은 합의의 대상도, 논쟁의 대상도 아니다. 보편의 인권이라는 전제 위에서 우리 사회가 공동의 문제로 가져가야 할 평등의 문제이다. 평등을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정치의 책임이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었던 편향된 고개를 돌려라. 더는 인권과 평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
2024년 11월 1일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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