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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유래비] 말죽거리 본문
말죽거리 유래는 '말'과 '죽'과 관련한 사실이 있어 '말죽거리'라는 이름을 낳게 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인조 2년(1624) 2월 8일에 인조(仁祖)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남도로 가는 길에 양재역에 이르러 기갈을 못 이기자, 유생들이 급히 팥죽을 쑤어 주니 먹었다 하여 말죽거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른 설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청나라는 이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다. 이때 이곳은 청나라의 장사 용골대가 지휘하는 우익군의 병참기지였다. 즉 청나라의 기마병들이 산성을 향하여 공격을 가한 후에는 교대로 이곳 병참기지에 물러나 말의 피로를 회복시키고 말죽을 쑤어 먹였다 하여 말죽거리라 했다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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