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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동판] 6.10 항쟁선언 현장 동판

知足 2024. 1. 17. 14:48

1987년 5월 27일 야당과 재야, 종교계 등이 힘을 모아 ‘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는 6월 10일에 맞춰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6 · 10국민대회)’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대학생들은 국본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중심으로 6 · 10국민대회에 호응하여 6월 초부터 각 대학별로 연일 집회와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6 · 10국민대회 하루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는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이러한 분노 속에서 6 · 10국민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6 · 10국민대회가 열리는 성공회대성당을 원천 봉쇄하였다.

그 결과 6 · 10국민대회는 대회장에 미리 들어가 있던 소수의 인원만으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