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欲知足

[성명] 22만 명의 성폭력 가담자 양산, 언제까지 붕괴된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본문

민우마당

[성명] 22만 명의 성폭력 가담자 양산, 언제까지 붕괴된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知足 2024. 8. 27. 15:24

 

[성명]

22만 명의 성폭력 가담자 양산,

언제까지 붕괴된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2019년 여성 수십 명에 대한 조직적 성착취 및 피해영상 유포로 수익을 창출한 텔레그램 성착취방(n번방) 참가자 수는 26만 명이 넘었다. 2020년부터 인천의 한 대학 재학생·졸업생 여성들의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해 제작·유포한 텔레그램방에 참가한 사람은 1,200명이다. 2021년부터 3년 동안 대학 동문들을 포함해 여성 지인의 얼굴 사진으로 허위영상물을 제작해 유포한 범죄자들이 지난 5월 입건된 이후에도, 전국 70여개 대학별 텔레그램방(1,300명 참여), 특정 개인 및 대학 피해자의 불법합성물 링크를 공유하는 텔레그램방(3,700명 참여), 중고등학교 대상 ‘겹지인방·지인능욕방’(2,340명 참여) 등 여성 지인의 신상과 사진, 불법합성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채널이 존재해 왔다. 여성 친족들의 사진을 공유하고 불법합성물을 제작·공유하는 ‘가족능욕’ 텔레그램방 참가자는 2,000여 명이다. 여성 군인을 ‘군수품’이라 부르고 ‘벗겨서 망가뜨릴’ 거라며 사진과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텔레그램방은 현역 군인만 가입할 수 있음에도 참가자가 924명에 이른다. 지인의 사진을 보내면 5초 만에 유료로 나체를 합성해주는 텔레그램 채널 가입자는 무려 22만 7천여 명이다. 해당 텔레그램방 안내메시지에는 ‘좋아하는 여자의 사진을 보내’라고 쓰여 있다.

 

매번 거듭되는 경악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사건은 반복되는가? ‘여성 지인’을 성적 도구로 보고 멸시하고 능욕하는 것을 놀이처럼 행하는 수십만 명. 이는 현 사안이 특정 텔레그램방에 직접 가입하고 불법콘텐츠를 제작·소비한 특정 개인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고도 남는 숫자이다. 여성들은 남성 동기·선후배에게, 직장 동료·상사에게,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조차 ‘몸평/얼평’의 대상, 나아가 ‘벗겨서 망가뜨릴’ 수 있는 ‘여자’로 취급된다. 이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저 참담할 뿐이다. 남성들끼리의 결속이나 ‘진짜 남자’로서의 인정을 위해, 재미 삼아, 혹은 수익을 위해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기를 선택하기란 왜 이렇게까지 쉽고 일상적인가? 한국 사회가 길러내는 ‘보통 남자’의 최저선은 지금 어디에 그어져 있는가? 같이 낄낄대고 부추기고 방관하고 방조하고 못 본척하고 용서하고 처벌을 미뤄 주면서, 성폭력 가해자와 가담자를 대거 양산해 온 것은 누구인가?

 

여성들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게 반복되는 디지털성범죄, 강간, 여성살해, 교제폭력 뉴스를 보면서 여성 멸시를 방조하는 사회, 망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붕괴된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분노 속에 지쳐가고 있다. 여성에 대한 범죄와 폭력을 제대로 처벌하지도 예방하지도 않는 사회에서 일상이 안전하다는 감각을 잃은 채로, 말 그대로 국가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 성범죄의 피·가해자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기술의 고도화로 범죄의 양상은 다변화되고 있다. 수많은 구성원이 일상의 안전을 위협받는 사회, 동료 시민에 대한 집단적 모욕과 멸시가 용인되고 학습되는 사회는 존속할 수 있는가? 아니, 존속해도 되는가? 이는 국가위기 상태이다.

 

가까스로 본인의 피해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여 사건이 알려진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또 다시 좌절한다. ‘채팅방 서버가 해외에 있어 피의자를 찾을 수 없다’, ‘사적 대화방이어서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영상물 제작은 했지만 유포는 안 해서 처벌이 어렵다’, ‘초범이므로 집행유예/기소유예다’라는 결과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 당시 수사가 제대로 착수되지도 않다가 ‘추적단 불꽃’ 활동가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서 가해자를 특정한 이후에야 사건이 ‘진지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n번방’ 참가자 중 혐의가 특정된 378명 중 실형이 선고된 건 12.4%에 불과하며, 집행유예 선고율은 69.1%다. 수사·사법기관의 안일한 태도가 성범죄의 반복을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22일 여성가족부는 인천 소재 대학 불법합성물 텔레그램방에 대해 ‘피해 영상물 삭제 지원’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물론 필요한 조치이다. 그러나 성평등 정책의 주관부처로서 문제 진단도 예방 대책도 없이 발생한 피해에 대한 사후 대처만을 언급하는 모습은 개탄스럽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국가가 거대한 산업이자 문화로서 양산된 디지털 성범죄 및 여성폭력 문제에 관해 어떤 입장과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부여잡고 그나마 있는 여성가족부마저 없애려 하며, 수많은 여성들의 사회적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직무 유기다.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 및 여성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평등 전담 부처를 강화하고 전 부처에 걸친 종합적 장·단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수사·사법기관은 법적 권한의 한계 운운하며 디지털성범죄 및 성폭력에 대해 기계적·소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그만두고, 여성혐오와 성차별의 연속선상에 놓인 반사회적 범죄를 엄중히 처단하고 예방해야 한다. 정부 및 국회는 국내외 인터넷 사업자에 대한 책무를 부과하고 강화하며 현행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범죄 및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공조 체계 구축 및 관련 법제도 개선에 힘써야 한다. 또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모든 시민은 이 끔찍하게 ‘정상화된’ 성폭력 문화에 연루되어 있다. 성별에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하는 윤리를 서로에게 단호히 요구하는 것, 모든 사회 구성원이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관행화된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이를 즉각 중단시키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2024년 8월 26일

한국여성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