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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 개발이 ‘몽키하우스’라 불린 성병관리소의 ‘기억’을 파괴된다 본문
보존을 위한 결심이 필요한 이유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지금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 앞에는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군기지촌 성병관리소(소위 ‘낙검자 수용소’) 건물을 철거하려는 측과 이를 막으려는 측이 연일 대치 중이다. 동두천시는 소요산 개발 사업을 위해 해당 건물을 철거하겠다며 지난 9월 6일 철거 예산(2억2000만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해 통과시켰고, 10월 2일 이를 바탕으로 철거업체를 선정했다. 10월 8일 오전부터는 시 공무원과 철거업체 직원을 동원해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굴삭기까지 동원되었나, 철거에 반대해온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진입로를 가로막으며 대치했다. 공대위 쪽은 동두천시가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건물을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도 없이 철거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연일 밤샘 농성을 하고 문화제를 개최하며 힘겹게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남한에 미군정이 시작되자 미군은 일본이 조선에 도입했던 국가규제 성매매제도인 공창제도를 자국 병사들의 성적 만족을 위해 재활용했다. 한국의 여성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펼쳤던 ‘공창제 폐지 운동’에 굴복해 ‘공창제도등폐지령’을 내렸지만 사실상 성매매는 묵인되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병관리도 지속되었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대규모 미군이 주둔하게 되자 평화롭던 농촌마을들은 미군의 후방 군사기지인 기지촌이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전국 곳곳의 미군기지촌에 성병관리소를 세웠다.
성병관리소는 미군’위안부’라 불리었던 여성들을 성병관리라는 명목으로 강압적으로 감금했던 곳이다. 쇠창살 속의 한국 여성들이 원숭이 같다하여 미군들에게는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강제적 성병검사에서 탈락한 ‘낙검자’들을 완치 때까지 가둬두던 곳으로 1973년 세워져 1996년 폐쇄되었다. 정기적 성병검진에서 떨어지거나 감염이 의심되는 여성 이외에도 미군 헌병과 한국 경찰, 보건소가 협력해 무차별적으로 여성들을 단속하는 ‘토벌’, 성병에 걸린 미군이 상대방이었던 여성을 아무나 지목하면 헌병이 클럽에 들이닥쳐 지목된 여성을 찾아내는 ‘컨텍’ 등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이 강제 수용되어 기준치 10배 이상의 페니실린을 맞으며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던 곳이다. 필자가 만났던 기지촌성매매 피해여성 대부분이 가장 끔찍했던 기억으로 낙검자 수용소를 꼽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 2022년 9월, 국가의 불법성과 반인도적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 여성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므로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볼썽사나운 오랜 건물’, ‘흉물’, ‘부끄러운 한국의 과거를 증거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넘어 미군기지촌 성매매라는 한국과 미국이 공모한 국가범죄의 주요한 증거물이자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군국주의와 가부장제, 인종주의와 여성혐오가 얽힌 ‘기억문화’의 터이기도 하다. 기억문화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 및 과정에 대한 의식적 기억의 모든 가능한 형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미학적이거나 정치적, 또는 인지적 본질을 갖는다. 문제는 기억문화의 담지자가 개인일 뿐만 아니라 사회집단이나 국가이기도 하며, 이들은 때로는 합의하지만 더 많게는 서로 갈등한다는 사실이다. 체험의 당사자들이 소수자이거나 약자일 경우, 혹은 시간이 흘러 체험의 당사자들이 더 이상 생존하지 않고 기억의 전승을 통해서만 다시 역사가 경험되는 경우, 쟁투는 강화될 수 있다. 더 자주는 정치·사회적 이유로 개인과 집단, 국가는 서로 갈등적이 되고 이를 통해 기억문화는 구부러지거나 단절된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이런 기억문화의 속성이 속속들이 배어 있는 장이다. 일본군성노예제가 한국군’위안부’와 미군’위안부’ 제도로 이어지며 지속된 여성과 여아에 대한 성폭력과 성착취의 역사, 대한민국과 미국이라는 조직적 포주와 성구매자들, 이에 동조하거나 관망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했던 이들에 의해 인격권과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혔음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꺾이거나 사라지지 않고 저항하고 살아냈던 여성들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곳이다.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픔을 보듬고 진실을 밝히며 평화의 길을 외롭게 걸어갔던 시민단체들의 활동, 차별과 낙인을 딛고 죽을힘을 다해 증언하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며 마침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받고 승소판결을 받아 냈던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용기, 여전히 사죄와 진상규명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는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국가의 실체가 충돌하고 대치하는 장이기도 하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 대상을 뛰어 넘어 보편적 여성인권의 감각을 건드리며 자아를 타자로 확장해 조금은 다른 실천을 촉구할 수 있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공대위 또한 그러한 성찰적 마주함을 통해 대안적 기억의 창출과 미래지향적 전승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또 다른 ‘개발’이란 이름으로 소중한 기억문화의 자산을 파괴하려 한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뭉개고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역사를 지우려 한다. 이러고도 일본군성노예제의 가해국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 진상규명, 기림과 올바른 역사교육을 말할 염치가 있는가.
동두천 소요산 성병관리소는 국가가 여성/시민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지이자 과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보여주는 준거틀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혹은 누구여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지이기도 하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붙들고 ‘이미’와 ‘아직’ 사이의 작은 공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힘을 내본다. 새로운 ‘우리’를 재구성할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조심스레 촉구하며 손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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