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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깨끗한 몸’을 미군에 제공하기 위했던 ‘건물’은 왜 존재해야 하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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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를 말하다]’깨끗한 몸’을 미군에 제공하기 위했던 ‘건물’은 왜 존재해야 하나

知足 2024. 10. 21. 07:18

결코 멈출 수 없는 이야기

김은진 두레방 원장

요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낡은 건물이 하나있다. 기지촌 여성(미군’위안부’ 여성)들이 ‘낙검자수용소’로 부르던 곳이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국가가 나서서 미군’위안부’ 여성들을 ‘애국자’ 혹은 ‘민간외교관’이라 추켜세우며 성매매를 독려했다. ‘깨끗한 몸’을 미군에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던 기관의 정식명칭은 ‘성병관리소’이다. 1973년에 이곳에 세워져서 1993년까지 운영되다가 1996년에 폐쇄된 채, 3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전국의 미군부대가 있는 곳에 모두 설치되었지만 다 없어지고, 동두천의 성병관리소 건물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이 건물의 철거를 막기 위해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 공동대책위원회는 50일이 넘는 기간동안 농성을 하며, ‘포크레인’을 몸으로 막고 있다.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 건물은 아픈 한국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는 소중한 국가유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병관리소가 보존되어 평화와 인권을 배우며 지키고,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장소로 되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심각한 국가폭력의 증거가 사라질 위험에 놓였기에 온몸으로 철거를 막고자 온힘을 다하는 것이다.

동두천시 ‘옛 성병관리소’와 함께 의정부시 빼뻘마을에 또 하나 위기의 건물이 있다. 38년동안 기지촌여성들을 지원하며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두레방 이 사무실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과거 성병관리소로 가기 직전, 기지촌 여성들이 1주일에 2번 성병검진을 했던 보건소 건물로, 2000년부터 두레방이 의정부시로부터 임대하여 2024년까지 24년동안 지켜 온 건물이다. 그런데 20024년 1월, 의정부시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고, 6월까지 건물을 비우라고 했으나, 의정부시장과의 면담으로 2025년 6월까지 유예된 상태이다. 두레방은 이 건물을 지키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의정부시는 침묵하고 있다.

그럼 38년간 기지촌여성운동을 펼친 두레방은 어떤 곳이며, 두레방 건물은 왜 중요한 것일까?

▲ 경기 동두천시가 관광 개발사업으로 소요산의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를 추진하자 시민단체들이 성병관리소를 근현대사 유적으로 보존해야 한다며 반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성병관리소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상대 성매매 종사자들의 성병을 검사하고, 성병에 걸린 여성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정부가 관리하던 시설로 1996년 폐쇄된 후 현재까지 소요산 주차장 인근에 흉물로 남아 있다. 사진은 동두천시가 지난 5월 촬영한 시설 내부의 모습. ⓒ연합뉴스

두레방의 출발과 활동

두레방(My Sister’s Place)은 1986년 문혜림이라는 미국 여성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당시 문선생의 눈에 들어온 여성은 미군들과 결혼했거나 기지촌에서 살면서 미군들을 상대로 성매매하는 한국여성들이었는데 이들은 세상 사람들 밖에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나라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 라는 생각으로 미국장로교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프로젝트를 통해 두레방을 창시하였다.

기지촌 여성들에게 상담, 영어교육, 공동식사, 한글교육, 요리교실, 야유회, 탈성매매를 위한 빵만들기, 카드만들기 등 프로그램을 하면서 ‘서로 도와가면서 일하는 공동체’라는 ‘두레’의 뜻으로 ‘두레방’이라 이름 지었고 이는 ‘여성들이 서로 돕고 모여서 쉬며 이야기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이후 두레방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지촌 여성들이 함께 모여 자존감을 회복하며 건강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기지촌에서 발생하는 불법 성매매 문제, 군사주의로 인한 폐해를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투쟁했으며 기지촌에 나날이 늘어나는 혼혈아들을 위한 놀이방, 공부방을 운영했으며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전문상담, 의료·법률지원, 치유 프로그램, 자활사업, 출판·영상자료 제작 등을 하면서 기지촌 여성들의 실태를 알려왔고, 여성들의 자존감 회복에도 힘써왔다.

아울러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매우 정치적이고 군사화된 영역으로서, 이들의 진정한 인권회복과 현실적인 지원체계의 마련을 위해서는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필요성과 민관의 협력체계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초기부터 여성들의 지원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담뿐 아니라 기지촌 여성의 인권침해 피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교육 및 홍보 등의 목표를 내걸고 2012년 발족한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함께 기지촌 여성을 위한 조례제정, 기지촌을 조성하고 관리하여 성매매를 조장했던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가손해배상소송, 특별법, 국제연대 등 눈부신 활동을 해왔다.

두레방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로 지정 받아 2006년부터 ‘두레방상담소’ 운영을 시작했다. 한편 90년대 중순부터 우리나라(기지촌)로 유입되는 성매매 피해 이주여성들을 돕기 위해 2009년 ‘두레방쉼터’를 설립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2021년 평택여성인권센터 ‘품’ 상담소를 설립하여 반성매매 활동을 확장해 가고 있다.

두레방 활동의 주요 성취와 역사적 의미

한국 최초로 기지촌 미군’위안부’ 운동의 공식적인 역사는 두레방으로 시작된다. 첫째 기지촌 여성들을 둘러싼 착취구조와 인권 침해적인 상황들을 처음 인식한 초대 원장 문혜림은 두레방을 세운 목적을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기 위함’이라고 선언했다. 두레방은 지난 38년 동안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정부시 안에, 빼뻘마을 안에 존재해 왔다. 둘째 기지촌 미군’위안부’ 여성을 피해자로 위치시켜 미군 성매매가 범죄임을 명확히 했다. 셋째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속에서 기지촌 미군’위안부’에 대한 낙인을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넷째 두레방은 반 성매매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80~90년대 반 성매매 활동이 미약한 당시 한국 상황에서 성산업은 성착취라는 사실을 공식화했다. 다섯째 성매매방지법의 제정(2004,2)에 앞장섰으며, 결과물로 2005년 성매매피해상담소로 등록(2006,운영), 외국인여성지원시설로 등록(2009), 평택여성인권상담센터 품 등록(2021)되어 국가예산을 받게 되었다. 여섯째 의정부 역사상 여성단체 최초로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했으며, 38년간 꾸준히 반성매매운동을 해왔다. 일곱째 2020년 4월 29일은 기지촌 여성 운동의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넘어가는 날이었다. 대한민국 최초로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통과되었다. 두레방이 7년 동안 헌신한 성과이다.

여덟째 2014년 6월 25일 시작된 122명의 기지촌 미군’위안부’여성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은 국가가 기지촌을 조성하고 여성들을 성매매하게 방조, 묵인, 관리한 책임이 있으며, 이를 배상하라는 취지로 1심에 이어서 항소심 판결에서도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고 불법 성병진료와 강제수용 및 토벌과 컨택 등이 인정되어 원고 전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2022년 9월29일, 마침내 대법원은 원심확정판결로 기지촌 성 산업 제도를 국가폭력으로 인정했다. 8년 3개월에 걸친 두레방 기지촌 여성 운동의 쾌거였다. 아홉째 19대, 20대, 21대 국회에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발의에 기지촌여성인권연대와 함께 하였으나 임기만료로 법안은 차례로 폐기되었다. 그러나 22대 국회에도 ‘기지촌 여성 특별법’은 발의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레방은 기지촌 여성 관련 또 다른 커다란 과제를 안고 힘쓰고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여성이 떠나간 빈자리가 이주여성들로 대체 되었다. 이는 빈곤의 여성화와 이주의 여성화로 인신매매성 이주로 이어진다. 인종차별, 계급차별, 성차별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여성들을 위해 법률, 의료, 각종 노동 인권침해 관련 지원과 상담뿐 아니라 이주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 안정적인 숙식, 귀국지원까지도 두레방이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상황과 이슈

현재 기지촌 미군’위안부’ 여성들은 70~80대의 고령으로 주택난과 의료난 등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한때 외화를 벌어들인다고 해서 ‘애국자’로 명명되었던 그녀들은 기지촌 쪽방에서 독거노인으로 외로움을 안고, 만성질환 및 빈곤과 싸우며 고단한 삶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여성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상황은 ‘두레방 이전’이다. 두레방 건물은 1979년에 준공됐고, 기지촌 여성들이 1주일에 두 번씩 검진받았던 시청 소유 ‘옛성병보건소’이다. 이런 아픔의 장소인 건물을 두레방은 2000년부터 평화교육의 장, 국제인권운동의 장, 기지촌 여성운동의 장으로 탈바꿈하여 현재까지 의정부시청에 임대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신규 사업대상지 68개소를 선정한다. 일명 새뜰마을 사업이다. 의정부시는 현 두레방 건물을 부수고 그곳에 커뮤니티센타를 짓는 것을 계획서에 넣어 빼뻘마을(고산동)이 선정받게 된다. ‘새마을운동’의 전신인 ‘새뜰마을사업’ 예나 지금이나 정부는 ‘새마을’이름을 왜 그리도 좋아하는지… 엣것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어 보인다.

두레방에 불똥이 튀었다. 2024년 1월 11일 시청 여성보육과 과장과 팀장이 두레방을 방문한다. 빼뻘마을은 더이상 기지촌이 아니므로 두레방이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시내로 가야 한다면서 사무실 이전 문제를 종용한다. 1월 22일 균형개발추진단 도시재생과 과장, 재생정비사업팀장 외 주무관 2인이 두레방을 방문한다. ‘두레방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보강하여 사용할 계획이다. 건물을 활용하여 빼뻘마을 라이프 푸드 팝업스토어(쿠킹클라스-통닭만들기 등)를 진행하고, 등산객도 유치하려 한다’는 뜻을 밝힌다. 이들에게 두레방 건물은 이미 커뮤니티센타 건물이다.

빼뻘마을이 깨끗하고 안전한 마을로 거듭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램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약자의 역사가 무시되어 고스란히 삭제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전쟁 이후 스스로 거름이 되어 도시의 경제를 일으키고 가족과 나라를 먹여 살린 기지촌 여성들, 국가폭력에 희생된 기지촌 여성들의 삶과 역사의 가치를 지우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노년이 되면 아파트를 주겠다고 속여왔던 정부가 아파트는커녕 기지촌 여성들의 보금자리요, 사랑방이요, 최후의 공간인 두레방을 빼앗으려 한다는 것에 언니들은 분노했고, 만나주지 않는 시장을 만나기 위해 시청 앞 거리로도 나섰다. 시장과의 만남은 성사되었으나 결론적으로 “1년간(25년6월) 유예를 두고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자”는 것이 시장의 답변이다.

공간 보존의 정당성과 활용 대안

두레방은 왜 ‘빼뻘마을’에 계속해서 있어야만 할까? 첫째 캠프스텐리가 아직 반환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빼뻘마을은 아직도 기지촌이다. 둘째 두레방 건물은 기지촌 여성들의 ‘옛성병보건소’이다. 두레방은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처로 가득한 장소를 치유와 회복의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시는 두레방 공간 보존으로 기지촌 역사와 기지촌 여성들의 삶, 두레방 역사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셋째 두레방이 빼뻘마을인 기지촌 현장에 있으면서 군사주의의 폐해와 기지촌에 대해서 전 세계와 대중들에게 홍보하는 활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넷째 두레방이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상담소이기도 하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공동체 조직이므로 공동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다섯째 두레방 건물을 보존하여 아픈 역사도 후대에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 여섯째 한국에 하나뿐인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의정부 두레방 ‘옛성병보건소’ 건물과 동두천 ‘옛성병관리소’ 역시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 시켜 보존해야 한다. 일곱째 의정부시는 내년까지 빼뻘마을 내 새뜰마을 사업을 완료해야 하는데, 사업 기한에 밀려 두레방을 내보내고, 엣성병보건소 건물을 허물거나 고쳐서, 커뮤니티 센터를 지을 계획이라고 사료된다. 역사적 건물이 짧은 기간에 대안으로 내놓은 등산객들을 위한 ‘팝업스토어’나 마을주민 대상의 ‘쿠킹클라스-닭튀기는 곳’으로 쓰여서는 않된다. 여덟째 시에서 요구하고 있는 두레방 이전은, 단순히 공간을 옮기는 사안이 아니다. 두레방을 옮기는 것은 기지촌 여성들의 보금자리요, 사랑방이요, 최후의 공간을 빼앗는 인권의 문제이다.

두레방의 공간활용 대안?

2021년 11월 9일 평택시 안정리에서 세계최초로 ‘기지촌여성평화박물관 일곱집매’가 개관했다. 박물관 조성에는 한명의 기지촌 피해여성 할머니의 큰 후원으로 부지 일부를 매입하고 20여년간 기지촌 여성을 지원한 (사)햇살사회복지회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평택 미군 기지촌에서 생활했던 미군 위안부 7명이 거주한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였다. 평택시와 경기문화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성과이다. 경기도 안에 있는 같은 지자체인데 지원이 이토록 다를 수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보다도 살아계신 기지촌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차별받고 외면받았던 고립된 시간에서 벗어나 사회와 다시 만나고 기지촌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며 다음 세대를 비롯한 시민사회, 국제사회와 소통하는 평화인권교육의 공간으로 조성돼 기지촌 피해여성 지원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법적지원 체계를 만들고 피해여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24년 5월 25일~6월 5일 두레방×ㅃㅃ보관소 연대로 ‘거품·소음·웅성거림’ 전시 프로젝트가 있었다. 기지촌 여성들의 아픔을 승화시키기 위해 행했던 미술치료 결과물, 공예작품, 사진자료, 인터뷰 영상을 바로 두레방 건물에서 전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존과 공생의 마을재생을 제안하다’ 포럼을 열어 두레방이 왜 빼뻘마을에 있어야 하는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를 경험으로 가장 현실적인 공간활용 대안은 역시 경기북부의 ‘기지촌여성 박물관’ 혹은 ‘여성평화 인권박물관’이다.

두레방은 우리 사회 여성 인권을 둘러싼 이야기의 집이다. 따라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옛 성병보건소’를 보존, 기록하여, 여성들의 삶을 알리고 후대에 전할 수 있는 기억의 공간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아울러 그 공간에 여전히 기지촌 여성들의 공동체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

“생태와 사람 그리고 시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도시재생은 있을 수 없다. 1년 유예가 아닌 60년의 성찰로 함께, 다양하게 숙의해야 한다. 두레방 공동체를 시민들이 함께 축적하고 의미화하는 커뮤니티아트센터 형태면 좋겠다.” <24.06.05 ‘공존과 공생의 마을재생을 제안하다’ 포럼 토론 시 이원재 문화연대위원장 제언>

앞으로 두레방의 행보는 열려있다. 대중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두레방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다. 9월에는 경기여성정책컨퍼런스 주제로 ‘공존과 공생의 마을재생을 제안하다’ -두레방을 기지촌여성박물관으로 포럼이 열렸다. 지금껏 기지촌을 알리기 위해 행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기지촌 평화기행, 경기도조례 – 다크투어)을 통해 지역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

기지촌여성 운동은 결코 멈출 수 없다. 두레방 공간은 부끄러운 장소, 감추어야 할 역사가 아니다. 두레방은 갑자기 ‘쫓겨’ 나서는 않된다. 두레방의 정체성이 성매매피해지원상담소 만으로 제한되어서도 않된다. 두레방 활동의 사회적, 역사적, 지역적 가치와 의미는 앞으로도, 더 다양하게 공유되고 해석돼야 한다. 두레방은, 두레방 언니들은, 두레방 활동가들은 목숨걸고 두레방을 빼뻘마을에서 지키고자 한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와 함께 의정부 ‘옛 성병보건소’도 함께 지켜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으로 두레방의 행보에 계속 관심 가져 주시고, 용기 내어 함께 참여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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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저지 활동에 힘 보태기 

https://www.socialfunch.org/peaceaction6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