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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윤희순(尹熙順)

知足 2022. 11. 16. 22:23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을미사변)과 단발령이 강행되자 시아버지인 유홍석이 유중악(柳重岳)·유중락(柳重洛) 등의 춘천 유림과 더불어 이소응(李昭應)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춘천과 가평 일대에서 의병작전을 전개할 때, 윤희순은 「안사람의 의병가」·「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의병가를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직접·간접으로 춘천의병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의병자금과 탄약·군량이 부족하게 되자 윤희순은 향민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해 여의내골[餘義川谷]주산(周山)에서 놋쇠와 구리를 구입하고 무기와 탄환을 제조, 공급하였다. 한편으로는 의병가를 지어 부르게 하여 의병 훈련을 진작시켰다.

이후 1911년 윤희순 가족 역시 유홍석을 뒤따라 만주로 들어가서 의병 재거를 도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3년 12월 유홍석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고, 1915년 1월 이미 망명해 온 유인석이 죽었으며, 남편인 유제원 또한 같은 해 10월 회인현(懷仁縣)에서 죽었다.

3대에 걸쳐 의병활동의 뒷바라지를 하던 윤희순는 10여 일 뒤인 8월 1일 자손에게 훈계하는 글과 일생기록을 남기고 향년 76세로 만주땅에서 일생을 마쳤다. 윤희순의 시신은 만주 해성현 묘관둔(海城縣苗官屯) 북산에 장사지냈고, 아직 고향으로 반장(返葬)되지 못하고 있다.

 

의암(毅菴) 유인석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