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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한국전쟁 중 순국한 군경유자녀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어 아동들을 보호하고 있는 남산원 건물 중 강당이다. 남산 모자원으로 불리기도 하는 남산원은 1952년에 국방부와 치안국의 주선으로 군인과 경찰유자녀 69명을 수용하여 군경유자녀원이라는 명칭으로 개원했다. 당시 현 자리에 있던 내목신사(乃木神社) 건물을 사용했다. 남산원 강당은 1959년에 미군의 도움을 받아 59평 규모로 지었다. 아동숙사로 사용했던 본관 건물 또한 그해에 80평 규모로 신축했으며 1982년에 현대식으로 보수했다. 1990년에는 군경유자녀원을 사회복지법인 남산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3년에 지하2층, 지상2층 규모의 현대식 빌라형으로 신관을 신축하여 어린이 보호 및 양육시설로 활용하고 있다.남산원 강당은 이후 1996년에 일부..
문학의 집 건물은 과거 중앙정보부의 역대 중앙정보부장들의 관저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현재 시민 문화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장소이다. 1961년부터 1981년까지 역대 관저로 사용했던 중앙정보부장은 모두 11명이다. 연면적 596.39㎡, 건축면적 337.75㎡에 지하1층, 지상2층 건물로 중구 퇴계로26길 65에 위치한다.1995년 국가안전기획부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겨간 뒤 7년 정도 폐허로 방치되어 있다가 2001년 10월 리모델링한 후 전시, 문화공간으로 용도 변경하여 사용중이다. 2005년 10월 증축했으며 1층은 세미나실과 전시공간, 2층은 사랑방과 회의실, 집필실 등이 있다.중앙정보부장 관저로 사용된 권력적, 폐쇄적이던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취지로 문화, 전시 공간으로 ..
신평화시장(新平和市場)은 1969년 12월에 개장한 의류전문 도소매상가로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298에 소재한다. 신평화시장은 일본, 동남아, 중국, 유럽, 미주 등 전세계에서 온 바이어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의류수출 전문상가이다. 신평화시장의 정식 명칭은 신평화패션타운이다.청계천변을 따라 좌우로 길게 뻗은 신평화시장은 1969년 평화시장에서 옮겨온 100여 점포가 문을 열고 ‘성동상가’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다. 지금은 스스로 개발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팔고 있지만 개장 초기 손님들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상인들은 힘겨운 상권확보 노력과 철 지난 재고상품들을 덤핑판매하는 전략으로 살아남았다. 1978년 7월 ‘성동상가’에서 ‘신평화시장’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99년 1월 신평화패..
1953년 노용언이 오장동흥남집 개업했다.1968년 노용언의 며느리 권기순이 이어받아 운영하고, 권기순의 아들 윤재순이 함께 운영 중 이다.1953년 개업하여 같은장소에서 3대째 운영하고 있는 함흥냉면집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오장동 함흥냉면은 1953년 서울특별시 중구 마른내로 108에 개업하여 3대째 식당업을 이어오고 있는 대중음식점이다.한국전쟁 때 월남한 창업주는 1953년 현 위치에 냉면집을 개업하였다. 모두 가난했던 시절 간판 없이 문을 열었지만, 배고픈 서민들은 故한혜선 할머니의 함흥냉면을 찾았다. 식당의 상호는 식당을 다녀간 사람들이 ‘오장동에 함흥냉면 잘하는 집’이라고 부르던 데서 자연스레 음식점 이름이 되었다.하지만 함흥냉면은 ‘실제로 함흥에는 없는 음식’이다. 함흥냉면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월남한 故한혜선 할머니가 함흥식 ‘농마국수’를 만들어 팔면서 ‘함흥냉면’이라 부른 데서 시작된 메뉴이다. 오장동 함흥냉면집이 함흥냉면의 시초가 되는 이유이다.1970년대 대중주간지에 소개된 후 입소문을 타면서 가게는 더욱 성..
1970년대 산업건축물의 발전상을 원형 그대로 보여주는 취수시설로서 서울의 도시화로 인해 증가된 취수 수요를 해소하기 위해 1976년 조성된 대표적인 산업시설이다. 연면적 5000㎡에 6개 동, 최저 지상 1층, 최고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이다.구의취수장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로 710에 위치하며 1976년부터 2011년까지 하루 100만t의 한강물을 끌어들여 정수장으로 공급한 시설이다. 2011년 9월, 강북통합취수장을 신설하여 취수 기능을 통합함으로써 사실상 기능이 거의 중단되었다. 시설은 제1취수장, 제2취수장, 염소실, 변전소, 관사, 사무실로 구성되어 있다.1976년 7월에 제1취수장, 1984년 5월에 제2취수장이 건설되었다. 염소실은 1992년, 변전소는 1997..
천호대교(千戶大橋)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연결하는 다리로 1974년 8월에 착공하여 1976년 7월 5일에 준공된 한강 교량이다. 강동구 천호동의 동명을 따고, 한강에 있는 큰 다리라는 의미에서 천호대교로 명명(命名)하였다.천호대교가 개통된 시기는 강동지구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고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되던 때이다. 천호대교는 1969년에서 1973년 사이 강동지구의 인구가 43% 폭증, 노후한 광진교의 교통 분담능력이 떨어지고 서울 도심지와 연결되는 간선도로망의 확충이 필요해짐에 따라 가설되었다. 서울 동부의 관문이 되는 이 교량이 개통되면서 강동구와 송파구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강북에서 이 다리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면 중부고속도로 이용에도 편리하게 되었다.천호대교는 길이..
동대문패션타운은 서울을 대표하는 패션시장으로서 생산부터 판매까지 한곳에서 이루어지는 패션 클러스터이자 20세기 산업화의 상징이다. 1998년에 두산타워와 밀리오레로 새롭게 형성되었다.두산타워는 자체적으로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하여 독자적 브랜드를 키우는 동대문 패션산업의 대표 상가이다. 지하 2층, 지상 8층의 1998년 준공된 의류 전문 도·소매시장이다.밀리오레는 1998년 지하6층, 지상14층으로 준공된 의류 전문 도·소매시장으로 IMF때 동대문 열풍을 몰고 온 동대문 패션산업의 메카이다. 밀리오레는 본래 의류, 잡화 등을 판매하는 일반시장이었으나 1998년 시장 내에 소매상권이 형성되면서 을지로6가 시장 조합원들과 함께 밀리오레를 탄생시켰다.2004년, 2009년, 2014년에 내부 리모델링을 했으며..
광희시장(光熙市場)은 1979년 5월에 개장한 대규모 패션몰로 서울특별시 중구 마장로1길 21에 소재한다. 가죽 제품과 보세의류를 주로 취급하는 광희시장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들이 많아 특이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내방객들이 들르는 필수코스이다.광희시장은 양질의 가죽제품과 보세의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외국인은 물론 남다른 멋을 추구하는 내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또한 동유럽 보따리상들의 내왕이 잦아 이들을 통한 수출입 업무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며, 지방이나 용산·이태원 등의 보세상가에서도 제품 구입을 위해 즐겨찾는 곳이기도 하다. 가방류와 일반 의류점이 밀집해 있는 지하 1층과 지상 1층은 오후 9시에 개장하여 오전 5시에 폐장한다. 모피제품의 2층과 가죽의류의 3층, 캐..
풍년철물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지봉로2길 1에 위치한 제1종 근린생활시설로 1969년에 개업한 철물점이다. 풍년철물은 1960년대 후반에 문을 열어 2대에 걸쳐 한곳에서 영업을 이어온 철물점으로 청계7가 교차로에서 우측 청계천변에 소재한다.풍년철물은 창업 후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성업을 이루었으나 IMF를 겪으면서 매출이 급감하여 현재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 운영주는 1988년 부친으로부터 풍년철물을 이어받았다. 풍년철물에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으며, 시대가 변하면서 판매 물품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주요 취급품목은 철물 및 공구들이며, 고객의 연령층은 대부분 30대에서 50대 사이로 한곳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덕분에 단골손님들이 많다.풍년철물이 소재한 건물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