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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배재고등학교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27(고덕동 313번지)에 있다. 배재고등학교의 전신은 배재학당이다. 배재학당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欲爲大者當爲人役)’라는 교훈 아래, 1885년에 미국 북 감리회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이다.1885년 4월 5일 인천항에 상륙한 아펜젤러 목사는 한국의 정세가 불안정하자 4월 13일 일본으로 돌아가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6월 21일 다시 인천항에 도착한다. 아펜젤러가 자신보다 한 달 먼저 도착하여 병원을 운영하던 스크랜튼 의사의 집 방 2칸을 빌려 교실로 만들고 이겸라(李謙羅)와 고영필(高永弼) 두 사람에게 영어수업을 하면서 배재학당이 시작되었다. 1886년에 학생이 16명으로 늘어나자 지금의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
십자성 마을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었다가 부상을 당한 전상자(戰傷者)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강동구 천호동에 조성된 국가유공자촌이다.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대한민국 국군 전상(戰傷) 용사들을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자금을 조달해 지은 마을로, 1974년 10월 31일 십자성마을로 이름붙인 뒤 지금까지 많은 국가유공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을 건립할 당시 원호처에서는 세대 당 정착 대부금을 보태 주었고, 박정희 대통령도 천사십만 원의 하사금을 내렸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밖의 힘겨운 일은 해병여단에서 지원해 주었다.5천여 평의 대지 위에 마을 복지회관과 101동의 주택을 건립해 해병대 출신 70세대와 육군 출신 30세대, 유족 1세대 등 총 101세대의 파월 전상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입주하였다. 처음..
한남대교(漢南大橋)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신사동 사이를 잇는 다리로, 1966년 1월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준공된 한강 교량이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고속도로의 관문 역할을 하는 다리로 한강에서 네 번째로 건설된 교량이다.1960년대 경제개발의 일환으로 경부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고, 영동지구 개발계획 등 서울 외곽지역의 개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한남대교의 개통으로 우리나라 전지역이 일일생활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건설 당시에는 제3한강교라고 불리었으나 1985년 한강종합개발공사를 진행하면서 한강의 교량 명칭을 정리할 때 한남대교로 명명되었다. 이후 경부고속도로와 강남대로의 교통량 증가로 부담을 갖게 되어 1996년 확장 및 성능개선 공사에 돌입, 2001년 기존 교량의 하류..
서강대학교 본관은 서강대학교가 1960년 개교하기 전인 1959년에 노고산 중턱에 완공되었으며, 정문을 들어서면 학교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서강대학교 본관은 대한민국의 근대건축 1세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의 초기 대표작품이다. 그는 세계적인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1956년 귀국과 함께 국내에서 다양한 건축 설계 활동하였는데, 초기 활동 시기에 설계한 작품에 본관이 포함된다.서강대학교 본관은 노고산 능선에 평행하게 세워졌다. 본관의 특징은 사선으로 차양 판을 대어 건물을 관통하여 햇살을 조정하게 한 점인데, 본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우측으로 보이는 격자 형태의 외부 차양막이 서향에 놓인 건물에 오후가 되면 들어오는 햇빛을 막는 역할을 해 준다. 특..
홍대 앞 서교 365는 마포구 서교동 365-2번지에서 26번지까지 23개의 필지에 형성된 가늘고 긴 상가거리를 일컫는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로3길 1 일대에 위치한 이 상가거리는 특이하게도 지번이 거리 명칭으로 굳어진 곳이다.홍대 앞 서교 365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건립되면서 연료인 석탄을 실어나르던 선로를 따라 형성된 거리이다. 1976년 발전소의 연료가 석탄에서 가스로 대체되면서 폐철로 철둑 위에 하나둘 들어선 건물들은 이곳 필지의 특성상 그 폭이 2~5m에 불과하다. 이렇게 좁고 가느다란 건물들이 약 250m에 걸쳐 길게 늘어서 있는 이곳은 마치 운행을 멈춘 기차처럼 보이기도 한다.홍대 앞 서교 365는 1999년 ‘홍대 걷고 싶은 거리 조성계획’에 포함되었으나 예산 ..
「호미화방」은 1975년 조사순이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교동에 개업하여 2대째 운영되고 있는 화방이다.호미화방은 1961년 1대 대표 조사순이 교직을 퇴임한 후 홍익대학교 앞, 국민은행 건너편에 문구점을 열었다가, 1971년 전(前) 누가화방 대표인 김기현이 운영하던 화방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사순 씨는 1970년대 홍익대 주변에 화실이 속속 생겨나고 화가지망생들이 몰려들자 화방을 운영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사업관이 변하였다고 한다. 사업관이 바뀌게 된 계기가 1993년 2월 15일자 『일간스포츠』의 ‘14평 작은 공간에 고품질화구 3천여종’ 기사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작품 한 점을 환성시키기 위해 새벽에도 몇 번씩 가게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 가난한 미술학도들이 나의 장사관을 ..
일광방앗간은 1965년에 개업하여 대를 이어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통방앗간으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성내천로39길 27-1에 소재한다. 일광방앗간은 현 운영주의 시부(媤父)인 창업주 최성옥이 지금의 장소에 방앗간을 개업해 오늘에 이른다.일광방앗간은 1960년대 중반에 개업, 1979년부터 아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다 타계 후 창업주의 며느리인 현 운영주가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1994년 방앗간이 있던 구옥(舊屋)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어 재개업하였다. 2006년 최운용 씨가 사망한 이후 부인 원재만 씨가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일광방앗간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옛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곳으로, 주 고객층은 인근의 주민들이다. 고객의 연령대는 다양한 편이며, 더러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
가락시장의 정식 명칭은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이며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대형차량의 도심권 통행량 감소의 목표를 위해 정부와 서울특별시가 송파구 가락동 600에 설립한 종합도매시장이다.1977년 ‘농수산물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건립이 추진되어 한국개발연구원·세계식량농업기구·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의 시장건립 타당성 분석 후 1979년 건설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당시 용산의 청과물 시장과 중구의 건어물 시장을 흡수, 이전하는 등 서울 총수요 청과물의 30%, 수산물의 36%, 식육시장의 80%를 처리할 계획이었다. 건축은 1982년 4월에 시작하여 1983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건축되었고 1984년 12월 공사를 마무리하여 1985년 6월 1일 공식 개장했다.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이후..
수제화 제조를 위한 원재료 판매점, 제조공장까지 체계적으로 밀집되어 있는 한국형 근현대 산업노동의 현장이다. 수제화 제조업체들이 밀집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말 수제화의 메카로 부상한 지역으로서 서울특별시 성동구 아차산로 113일대이다.1980년대부터 수제화 제조업체가 밀집하기 시작하여 1980년대 말에는 전국 수제화 생산량의 90% 가량을 제조했으며 1994년경 탠디가 성수동에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하청업체들이 모이게 되었다. 제조에 적합한 공장, 저렴한 임대료, 지하철역과의 근접성 등의 조건들은 구두 제조업체들에 적합했으며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 냄새, 화공약품으로 인한 지역주민들의 불만 해소를 위해 자연스레 한 곳으로 모이게 되었다.2010년 기준 310개 업체에 2,435명이 종사(기..
국립서울현충원은 국가 발전을 위해 명예로운 일을 한 사람들과 국가원수, 애국지사, 순국선열 등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을 안장한 곳이다.국립서울현충원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위치에 43만여 평(142만㎡)의 대지에 한국전쟁으로 전몰한 국군장병들을 안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54년 육군공병대에 의해 착공되어 72000평의 묘역을 조성하여 1957년에 준공되었다.1966년 장군 제2묘역 조성, 1968년 학도의용군묘역 150평 조성,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월남전 전사자들의 묘역 증설을 위해 장병묘역(제55,56묘역 4,200평, 제12,13묘역 2,000평), 국가유공자묘역(제1묘역 1,200평과 제2묘역 300평), 장군 제1묘역(하단 6,200 평)을 조성했다. 1975년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