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少欲知足
(2022-10-12) '익산 평화의 소녀상'은 익산여성의전화 제안으로 건립사업이 추진되었다.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과 시민모금활동을 꾸준하게 전개하여 2017년 8·15행사때 익산역 광장에 '익산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되었다 . 익산역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현재의 위치에 세워져 지역의 젊은이들이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상징적인 공간이다.
(2022-06-21) 매년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역사적인 날이다.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이를 기념하고 있다.
(2019-07-11) 홍성군 평화의 소녀상이 군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세워졌다. 2017년 8월 15일 제72주년 광복절을 맞아 홍주성 옆 공영주차장에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2022-09-28) 수원 평화의 소녀상은 수원시민과 단체의성금으로 2014년 5월 3일 수원시청역(올림픽공원)에 설립되었다.
(2022-09-24) 왕십리역 5번 출입구에 2017년 6월 10일에 세워진 '성동 평화의 소녀상 기림비'를 만날 수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평화비(平和碑)라고 불리기도 하며, 상의 모양은 의자에 앉아있는 모양이 대표적이다. ‘역사인식의 문’ 앞에 소녀상이 피와 눈물로 쓴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고 있다. ‘희망의 문’은 한 소녀가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손 위에 앉힌 채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공감의 문’에는고 김학순 할머니의 모습을 한 소녀상이 서 있다.
안산지역 단원구 평화의 소녀상은 2020년 안산시청 내에 건립됐다. 매년 8월 14일 전쟁으로 참혹히 희생된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맞춰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안산지역 상록수역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난 2016년 상록수역 광장에 건립됐다. 매년 8월 14일 전쟁으로 참혹히 희생된 피해자들의 넋을 달래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맞춰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2014-08-13 ) 2014년 8월13일 오후 12시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8.14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공동행동의 하나로 1139차 수요정기 시위가 있었다.
(2022-07-17) 전주 전동 기억의 광장 (전주 풍남문 광장) 에는 2015년 8월 13일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평화의 소녀상의 맞은 편에는 세월호 분향소가 위치하고 있다.
(2022-05-25) 국내거주자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실명으로 증언해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여의고 1939년 17세 때 일본군에게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고, 5개월 뒤 한 조선인 상인의 도움으로 위안소를 탈출했다. 1990년 일본이 '일본군은 군대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자 이에 격분해 폭로할 것을 결심했다. 1991년 광복 46주년을 하루 앞두고 국내 최초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다. 이후 정신대 문제 항의집회에 빠짐없이 참가하는 한편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으며, 이를 국제사회 문제로 확대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김학순은 '민족의 아픔을 개인적인 한을 넘어 역사적 교훈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