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여성가족부
- “전세사기 피해자의 잇따른 죽음에 명복을 빕니다”
- 2023 여성노동자대회
- 민우총회
- 깡통전세 공공매입 및 피해구제 특별법 제정하라!
- 8888
-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 1029참사
- 38여성의날
- 고용평등상담실폐지중단
- 채용성차별
- 여성의날
- 수요시위
-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는 사회적 재난이다!
- 세월호
- 日本은 謝罪하라
- standwithmyanmark
- 강간죄 개정
- 노조법 2·3조
- 추모촛불
- 민우회
- 3·8 세계여성의날
- 고용평등상담실
- 극장판우당당탕은하안전단_진정한용기
- 성폭력
- 38여성대회
- 임신중지
- 1029
- 차별금지
- Today
- Total
목록분류 전체보기 (1390)
少欲知足
(2020-06-27 ) 1980년 10월 기공식을 가진 뒤 1984년 11월 일곱 번째의 국립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진주는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인 진주성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촉석루·쌍충사적비 등 많은 임진왜란 유적들이 남아 있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들의 과학적인 보존과 전시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1996년부터 본격적인 전시 체제를 개편하여 1998년 1월 15일 기존의 가야 문화 위주의 박물관에서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2020-06-27) 경상남도 유형문화제 제666. 정면 5칸, 측면 4칸. 남강(南江)의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잡고 있어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이다. 1241년(고종 28)에 창건하여 7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으며, 1365년(공민왕 14)에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르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1725년(영조 1) 목사 안극효(安克孝)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중수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960년에 재건하였다.
관덕정(觀德亭)은 1448년(세종 30) 목사 신숙청(辛淑晴)이 군사들의 훈련청으로 창건한 제주도의 대표적 건물의 하나로, 1480년(성종 11)에 목사 양찬(梁讚)이 중수한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1969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덕(觀德)’이란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 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 에서 따온 말로, 평소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2020-06-24)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도 고유의 고고·민속 자료와 동물, 광·식물, 해양생물 자료들을 수집하고 조사 연구를 통해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지난 1984년 5월 24일 개관한 이래 실물자료와 모형·마네킹 등을 활용해 입체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제주문화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0-06-24) 2020년 6월 23일 당일치기 제주여행, 구석구석 돌아보고 걸어서 공항까지 자연사박물관 삼성혈 제주관아 동문시장 만덕기념관
(2020-06-18) 강원도 춘천시 우석로 70 (석사동) 소재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박물관이다. 1994년부터 준비가 진행되어 2002년 10월 30일에 개관하였다. 2003년에는 '올해의 우수 건축물'로 선정되었다. 주요 소장 문화재로는 국보 제124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보물 제1509호 허목 초상, 보물 제1871호 동제염거화상탑지, 보물 제1872호 전 회양 장연리 금동관음보살좌상, 보물 제1873호 원주 학성동 철조약사여래좌상, 국가민속문화재 제120호 청풍부원군 상여 등이 있다.
국민운동으로 추진되어 1987년 8월 15일에 개관하였으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위치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세우자는 논의는 1945년 광복 직후부터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1946년 천도교회관에서 사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기념관 건설준비위원회가 결성된 것과,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주최 ‘광복30주년기념심포지엄’에서 정식 안건으로 토의, 합의하여 정부에 건의한 바도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82년 일본의 교과서에 실린 식민지 서술 부분이 한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켜, 이에 한국 국민이 국민운동으로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정부에서는 소요 부지인 400만㎡을 매입하여 제공하였다. 국민성금 490억 2432만 5009원(1..
일제 강점기 착취와 억압의 상징물로 남아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해체 철거됐다. 이 총독부 건물은 1926년 경복궁의 정면을 가로막고 세워졌고,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 정부 수립 후에는 중앙청으로 각각 쓰였다. 1986년부터 해체하기 전까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됐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국민 의견과 어두운 역사의 상징일지라도 후대에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맞섰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강력히 밀어붙여 건물은 철거됐다. 당시 해체했던 건물의 부재들은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이전되어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에 전시되고 있다. .
1989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9칸반 규모의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으나 많이 변형되어 원형을 찾기 힘들다. 집 뒤의 고목에는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이동녕은 1869년에 태어났으며 한일합병 이후 우리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하여 헌신한 인물이다. 상해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의 의정원원장(議政院院長), 국민총리, 대통령 대리 등을 역임하였으며,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이 일어나자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에 참가하여 항일전에 투신하였다가 중국 사천성에서 병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천안시립풍물단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