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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유산] 함석헌 가옥 본문
함석헌 가옥은 사학자이자 민권운동가 함석헌(咸錫憲, 1901~1989)이 1983년부터 1989년 타계할 때까지 아들 부부와 함께 말년을 보낸 사택으로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23길 33-6에 소재한 주거시설이다. 2015년 9월 서울특별시와 도봉구는 이곳을 함석헌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해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함석헌은 190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근현대사의 험난한 격동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간디’라 불릴 만큼 독립운동과 민주화, 인권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함석헌은 계우회 사건, 성서조선 사건, 신의주학생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수감생활을 하였다. 1947년 월남한 후에도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전개, 수차례 투옥되었다.
함석헌 가옥은 1973년에 준공된 지하 1층 지상 1층의 시멘트블럭조 및 연와조 건축물로, 건축면적 124㎡에 연면적 157.19㎡이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거쳐 함석헌 기념관으로 변모하였다. 함석헌 기념관은 가옥의 원형을 최대한 보전하면서도 참관객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함석헌이 생활했던 1층은 전시실로 바뀌었고, 창고로 사용하던 지하 1층과 앞마당의 유리온실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함석헌 가옥은 ‘한국의 간디’로 일컬어질 만큼 인권 향상에 힘썼던 함석헌이 말년을 보낸 곳으로 민주화운동과 민권운동에 평생을 보낸 함석헌의 삶과 자취를 되새길 수 있는 미래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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