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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33호] 강화 고려궁지(江華 高麗宮址) 본문
(2022-06-20)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고려 궁궐이 있었다.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을 피해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이후 최우 장군이 2,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여 1234년 이 곳에 왕궁을 건립하였다. 규모는 작으나 궁궐과 관아의 명칭을 개경과 같게 하고, 뒷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칭했다. 이후 몽골에 항쟁하던 39년간 고려 왕궁으로 사용하다가 1270년 몽골군의 화친 후 고려왕이 개성으로 환도하게 되자 몽골의 요구에 따라 궁궐과 성곽을 모두 파괴하였다. 현재의 고려궁지 면적은 고려시대 궁궐의 영역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래는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대규모 공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행궁, 유수부 건물과 함께 민가까지 들어서면서 고려시대 궁궐의 모습이 사라졌다. 1782년 (정조6년)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왕립 도서관인 외규장각을 건립하였으나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강화도를 습격하면서 외규장각 안에 보관중이던 서적을 약탈해가고 외규장각을 포함한 여러 건물이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다.
1964년 고려 궁궐터는 사적 제133호 "고려궁지"로 지정되었고, 1977년 복원 정비 된 이후 현재는 강화유수부 동헌, 강화유수부 이방청, 강화동종과 2003년 복원된 외규장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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