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동판

[소실(消失)동판] 협성계공 터 동판

知足 2024. 2. 22. 14:16

문송면은 1988년 7월 2일 수은중독으로 사망할 당시 열다섯 살의 온도계 공장 노동자였다. 충남 서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던 문송면은 야간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중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1987년 12월 5일부터 온도계 제조업체인 서울 양평동4가 협성계공에 취업해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도 전, 신나 세척과 온도계의 수은을 주입하는 일을 한 지 한 달 만에 몸이 아프고 머리가 쑤시기 시작했다. 문송면은 두 달 만에 회사를 휴직할 수밖에 없었고,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의과대학에서 산업보건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던 시절의 아픈 현실이었다.

어렵게 서울대병원에서 수은 중독과 신나 중독이라는 진단을 받은 문송면은 비로소 산재요양 승인을 신청하지만, 회사와 서울남부지방노동사무소는 서울대병원이 산재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마저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가 회사와 노동부로부터 산재요양승인을 받은 것은 <동아일보> 등 언론에 사건이 폭로된 이후인 6월 20일이었다.

 

당시 <한겨레신문>은 '무관심의 그늘 직업병'이라는 기사에서 "산업보건 전문가들은 직업병을 찾아낸 문군의 경우는 '정말 운이 좋은 예'라고 지적한다"라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여러 가지 직업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잘 모르는 탓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직업병이 확실한데도 의사들이 제대로 진단을 해주지 못해 보상조차 못 받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정말 운이 좋은 예'였던 문송면은 수은 중독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인 7월 2일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사망하고 만다. 문송면의 시신은 노동계가 문송면 산업재해노동자 장례위원회를 꾸려 투쟁을 벌인 끝에 회사 측의 공개사과와 보상금 합의를 이루어낸 다음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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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성계공 터 (협성히스코)

 

 

시공 당시 사진
자료사진
동판은 사라졌다.